매력 있는 도시는 거리에서 시작된다- 윤 희 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센터장
2025년 05월 12일(월) 00:00
도시의 매력은 무엇인가? 거대한 빌딩, 광활한 공원, 인상적인 조형물이 도시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진짜 도시의 매력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시의 매력은 거리에서 온다.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 길모퉁이 작은 가게와 노점, 이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리듬’ 속에서 도시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1961년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이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녀는 도시의 생명은 거리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거리에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 각기 다른 이유로 움직이는 이웃들,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흐름이 얽혀 있으며, 바로 이런 ‘보도 위의 발레(Sidewalk Ballet)’야말로 도시를 살리는 힘이라고 했다.

이는 사람들이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일상과 리듬으로 거리를 채우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뜻한다. 출근길에 서두르는 직장인, 학교로 향하는 학생, 가게 앞을 쓸며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주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뤄내는 풍성한 흐름. 바로 그 속에서 도시의 생명력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로 채운 단조로운 계획 도시가 아니라 짧은 블록과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어우러진 공간, 다양한 기능이 뒤섞인 거리 속에서 비로소 도시의 삶이 움튼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제이콥스의 통찰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후위기, 팬데믹, 고령화, 사회적 불평등, 삶의 질 문제에 직면한 우리는 “어떤 도시가 성장하는가?”를 넘어 “어떤 도시가 인간답게 살만한가?”를 묻고 있다.

이런 질문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15분 도시’와 ‘대자보 도시’다. 15분 도시는 주거지에서 직장, 학교, 병원, 상점, 공원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곳을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를 꿈꾼다. 거대한 이동 대신, 동네 중심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자보 도시는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을 중심에 두는 도시 전략이다.

왜 지금 이 흐름이 필요한가? 첫째, 기후위기 때문이다. 도시 교통은 탄소배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동차 중심 생활을 버리고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이동 방식을 바꾸는 것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탄소 감축 방법이다. 광주만 해도 온실가스 직접 배출원의 절반 이상이 자동차에서 나온다.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팬데믹의 교훈 때문이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지역 생활권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을 때 멀리 나가지 않고도 내 동네 안에서 의료, 교육, 쇼핑, 여가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도시 생활의 질을 결정했다. 결국 위기에 강한 도시는 거대한 이동이 아니라 촘촘한 생활 기반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셋째, 건강과 삶의 질 때문이다. 자동차 이동에 의존하는 생활은 비만과 만성질환을 악화시킨다. 반면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생활 속 운동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는 걷기가 가능한 도시가 곧 ‘건강한 도시’를 의미한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수가 된 것이다.

넷째, 도시의 평등 때문이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이동과 생활에 차별받지 않는 도시, 소득과 연령,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리. 진정한 도시의 평등은 자동차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일상생활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섯째, 경제성 때문이다. 무분별한 확장 대신 기존 도시를 더 촘촘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고 유지 비용도 훨씬 낮다. 걷기 좋은 거리, 작은 가게, 복합용도 공간은 지역 경제를 튼튼하게 하고 도시를 더 매력적인 곳으로 바꾼다. 지역 상권이 살아 있고 골목마다 다양한 상점이 존재하는 도시는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다.

결국 매력 있는 도시는 자동차 위가 아니라 거리 위에서 탄생한다. 화려한 마천루도 광활한 신도시도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걷고 이야기하고 머무를 수 있는 거리에서 도시의 얼굴이 나온다.

15분 도시는 삶의 거리를 압축하고 대자보 도시는 거리의 질을 바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고 서로를 바라보고 일상을 나누는 거리. 그 속에서 도시의 매력은 비로소 살아난다. 우리는 어떤 거리를 걷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도시를 살아가고 싶은가?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6975600783788078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13일 05:4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