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자연이 건네는 말’] 기후변화가 불러온 바다의 신호, 쥐가오리
2025년 04월 24일(목) 00:00
2024년 7월 전남 영광군 앞바다에 생소한 생명체가 등장했다. 긴 꼬리와 넓게 퍼진 지느러미로 하늘을 나는 듯이 유영하는 대형 쥐가오리(Mobula mobular)였다. 머리 양쪽에 난 한 쌍의 지느러미가 마치 악마의 뿔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유럽에서는 악마 가오리라고도 부른다. 한반도 연안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쥐가오리는 우리 어민들에겐 낯선 손님이지만 연구자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신호로 여겨졌다.

놀랍게도 이 생물은 거의 100년 전인 1928년 일제 강점기 일본의 동물학자 모리 타메조가 목포 앞바다에서 채집하여 보고하면서 한반도에서도 아열대성 가오리류가 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뚜렷한 추가 관측이 없어 이 기록은 학계에서도 잊힌 존재로 남았다.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쥐가오리가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 잡힌 쥐가오리는 목포의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에서 정밀 연구 중이다. 이 기관은 국립생물자원관 산하의 지역 거점 연구시설로 남서해안 생물 다양성을 기록하고 새로 출현한 생물의 정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간 대부분의 주목은 동해안이나 제주도에 집중돼 있었지만 서해의 생태 변화 역시 예외가 아님을 이 연구기관은 꾸준히 증명하고 있다. 호남권생물자원관은 단순히 샘플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해양 생물 관측의 전초기지이자 핵심 연구기관이다.

쥐가오리는 어떤 생물일까? 몸통 양옆에 넓게 펼쳐진 커다란 가슴지느러미가 있어서 날개 치듯이 헤엄친다. 머리는 납작하고 다른 가오리들이 몸 아래쪽에 입이 있는 것과는 달리 입이 몸통의 양쪽에 정면을 향해 있다. 이빨이 없는 커다란 입으로 플랑크톤 같은 작은 먹이를 걸러서 먹는다. 지중해와 포르투갈 유역에서 발견되는 쥐가오리는 주로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번식한다. 아시아에서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본 남부 해역 등에서 주로 서식해 왔다.

한반도 서해에서 쥐가오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따뜻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돌아왔다. 이 현상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이상 사례가 아니다. 쥐가오리는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기후지표종으로 볼 수 있다. 최근 30년간 한국 연안의 평균 해수 온도는 약 1.5도 상승했다. 특히 서해는 겨울철 수온이 뚜렷하게 올라가며 아열대 해양 생물들이 북상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쥐가오리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최근 제주와 남해에는 만타가오리도 잇따라 관측되고 있다. 만타가오리는 가오리류 중에서도 거대한 종으로 날개폭이 6미터 이상에 이르는 개체도 있다. 과거에는 적도 근처 심해에서만 관찰되던 이들이 기후 변화에 따라 한반도 해역까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해양 동물의 이동이 아니라 생태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포식자가 등장하면 먹이망의 구조가 바뀌고 기존 종의 서식지와 번식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생태적 충격은 경제적 문제로도 이어진다. 쥐가오리는 상품성이 낮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물에 걸려도 팔리지 않기 때문에 어획량에는 포함되지만 수익에는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쥐가오리는 같은 지역의 꽃게나 백합조개 등과 먹이를 두고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쥐가오리는 어민 입장에서는 분명 불청객이다. 물론 불청객이 새로운 생태적 공백을 채울 수도 있다. 예컨대 연안 생태계에 침입종이 증가한 상황에서 쥐가오리 같은 대형 포식자가 해저 생물군집의 균형을 되찾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이 바다는 과연 여전한가?” 지난 세기 동안 쥐가오리는 한반도 해역에서 사실상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온 그 모습은 반가움보다는 묵직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되돌리기 어렵다는 메시지다.

지금도 목포 앞바다에 머물고 있을지 모르는 쥐가오리는 단순한 어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생물학적 사서(史書)다. 100년 전 모리 타메조의 채집 기록 그리고 2025년 호남권생물자원관의 현장 연구는 이 생물의 의미를 단단히 꿰어주고 있다. 바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안에 사는 생명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지금,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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