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세상 속 네모, 네모 속 네모-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세상을 누가 둥글다고 했을까. 온통 네모인 것을, 도시의 길과 집은 네모로 모두 반듯반듯하고, 농촌 들녘도 네모로 반듯하다.
논틀밭틀 길도 구불구불 골목도 나날이 반듯하게 펴서 네모 세상이 되어간다. 반듯이 이어진 길을 따라 네모진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려면 네모진 계단을 밟고 네모난 엘리베이터를 타서 네모난 버튼을 누르고 올라간다. 네모난 현관 앞에서 다시 네모난 번호 키 위의 네모난 숫자들을 누른다. 네모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네모난 방으로 들어 가면 거실·주방·벽·천장·텔레비전·냉장고·벽·거울·달력도 온통 네모다. 그 네모난 침대 네모난 매트리스 위에 익숙하게 올린 우리 몸, 그 몸에 쓰인 자모도 네모가 두 개나 된다. 벽에 걸린 달력도 네모, 반듯하다. 달력 안의 숫자들도 칸칸이 네모 속에 들어있다. 앞 달, 뒤 달까지 100개가 훌쩍 넘는 네모들이 모여 무슨 모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좀 답답하다. 창으로 시선을 옮긴다. 창틀도 네모 창문도 네모 유리창도 네모다. 창을 열고 밖을 본다. 거리 가득 네모난 자동차들이 네모난 길을 가고 있다. 건축 자재를 가득 실은 네모난 트럭엔 네모난 벽돌들 네모난 타일, 네모난 상자들이 가득 쌓아 실었다. 자잿값을 치르려고 꺼낸 지갑도 네모, 서로 주고받는 명함도 지폐도 네모다.
그뿐인가, 공공기관들도 군대 막사도 상가들도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도서관도 온통 네모다. 진열대도 네모, 책상과 의자도 네모, 책꽂이도 네모, 라벨도 네모, 켜켜이 쌓아둔 책들도 네모다. 책 속의 페이지도 네모, 글들도 한 줄로 나란히 네모, 문단과 문장도 네모, 사열하는 병사처럼 일제히 줄을 맞춰 섰다.
수많은 네모로 이루어진 원고지, 그 속에 수인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글자들, 이리저리 뒤집어도 주사위처럼 네모난 곳에서 혹여 어느 하나라도 벗어나면 사방에서 뭇매를 맞을 것처럼 한 글자 오탈자 없이 글자들은 질서 정연하다. 땅과 방을 소유하는 일, 가장 효율적이며 정확한 구분이 네모였는지, 세상은 온통 네모다.
그런데 살아있는 것에는 네모가 없다. 나무, 꽃들, 수많은 이파리 어느 것 하나 생명을 가진 것들은 네모가 아니다. 수많은 물고기와 깊은 산속 다양한 동물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갖가지 새들. 파릇파릇 뛰는 것들과 부풀거나 줄어드는 탄력 있는 것들, 어느 하나 움직이는 것이 없다. 얼굴도 없고 손발도 없으니 응당 심장도 없다.
그런데 왜 이리 우린 네모에 친숙한가. 네모는 왜 이토록 편리하고 평안한가. 제식 훈련하듯 하는 각진 네모를 우린 이토록 사랑하는가. 그건 어쩌면 우린 네모와 지겹도록 함께 살면서도 어느 한순간도 네모를 떠올리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사는 동안 네모에 갇혀 산다고 생각하면 네모난 감방 안의 수인처럼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네모를 기억하지 않기에 기꺼이 그 모서리들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을 때 네모는 더는 네모가 아니다.
네모는 왜 이토록 꿈틀꿈틀 살아있을까. 어떠한 네모도 숨을 쉬지 않는다. 그래서 네모는 자신 안에 무한이 호흡하는 것들, 그 생명들을 사랑하고 담아내는지 모른다.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여러 개 방, 또 그 방에는 네모난 액자, 책상 침대 등 수많은 네모가 꿈틀꿈틀 살아간다. 성냥갑 속 성냥처럼 옹기종기 우린 네모 안에서 탈출을 꿈꾸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 네모에 편안히 기대거나 네모에 갇혀 휴식을 취하며 살고 있다. 네모가 꿈틀꿈틀 움직일 때 네모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네모는 또 왜 이토록 광대하고 말랑말랑한가. 작은데도 내 몸을 충분히 받쳐주는 네모 의자, 네모 침대, 외풍을 막아주는 네모 벽은 또 얼마나 광대하고 광활한가. 책과 책 속의 문단과 문장, 글자들도 신문지처럼 반듯반듯 네모지만 그 속의 의미, 글자의 뜻, 수많은 작가의 생각은 또 네모진 것 하나 없이 얼마나 부드럽고 유연한가.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뒹구는 방 또한 얼마나 너그럽고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우리는 네모 속에 산다. 그러나 네모는 자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린 네모난 집에서 네모난 길을 걸으면서도 네모로 살지 않는다. 동글동글 동그라미를 꿈꾸며 산다. 동그라미를 품고 있는 네모, 그래서 위대하다.
논틀밭틀 길도 구불구불 골목도 나날이 반듯하게 펴서 네모 세상이 되어간다. 반듯이 이어진 길을 따라 네모진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려면 네모진 계단을 밟고 네모난 엘리베이터를 타서 네모난 버튼을 누르고 올라간다. 네모난 현관 앞에서 다시 네모난 번호 키 위의 네모난 숫자들을 누른다. 네모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네모난 방으로 들어 가면 거실·주방·벽·천장·텔레비전·냉장고·벽·거울·달력도 온통 네모다. 그 네모난 침대 네모난 매트리스 위에 익숙하게 올린 우리 몸, 그 몸에 쓰인 자모도 네모가 두 개나 된다. 벽에 걸린 달력도 네모, 반듯하다. 달력 안의 숫자들도 칸칸이 네모 속에 들어있다. 앞 달, 뒤 달까지 100개가 훌쩍 넘는 네모들이 모여 무슨 모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네모로 이루어진 원고지, 그 속에 수인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글자들, 이리저리 뒤집어도 주사위처럼 네모난 곳에서 혹여 어느 하나라도 벗어나면 사방에서 뭇매를 맞을 것처럼 한 글자 오탈자 없이 글자들은 질서 정연하다. 땅과 방을 소유하는 일, 가장 효율적이며 정확한 구분이 네모였는지, 세상은 온통 네모다.
그런데 살아있는 것에는 네모가 없다. 나무, 꽃들, 수많은 이파리 어느 것 하나 생명을 가진 것들은 네모가 아니다. 수많은 물고기와 깊은 산속 다양한 동물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갖가지 새들. 파릇파릇 뛰는 것들과 부풀거나 줄어드는 탄력 있는 것들, 어느 하나 움직이는 것이 없다. 얼굴도 없고 손발도 없으니 응당 심장도 없다.
그런데 왜 이리 우린 네모에 친숙한가. 네모는 왜 이토록 편리하고 평안한가. 제식 훈련하듯 하는 각진 네모를 우린 이토록 사랑하는가. 그건 어쩌면 우린 네모와 지겹도록 함께 살면서도 어느 한순간도 네모를 떠올리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사는 동안 네모에 갇혀 산다고 생각하면 네모난 감방 안의 수인처럼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네모를 기억하지 않기에 기꺼이 그 모서리들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을 때 네모는 더는 네모가 아니다.
네모는 왜 이토록 꿈틀꿈틀 살아있을까. 어떠한 네모도 숨을 쉬지 않는다. 그래서 네모는 자신 안에 무한이 호흡하는 것들, 그 생명들을 사랑하고 담아내는지 모른다.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여러 개 방, 또 그 방에는 네모난 액자, 책상 침대 등 수많은 네모가 꿈틀꿈틀 살아간다. 성냥갑 속 성냥처럼 옹기종기 우린 네모 안에서 탈출을 꿈꾸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 네모에 편안히 기대거나 네모에 갇혀 휴식을 취하며 살고 있다. 네모가 꿈틀꿈틀 움직일 때 네모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네모는 또 왜 이토록 광대하고 말랑말랑한가. 작은데도 내 몸을 충분히 받쳐주는 네모 의자, 네모 침대, 외풍을 막아주는 네모 벽은 또 얼마나 광대하고 광활한가. 책과 책 속의 문단과 문장, 글자들도 신문지처럼 반듯반듯 네모지만 그 속의 의미, 글자의 뜻, 수많은 작가의 생각은 또 네모진 것 하나 없이 얼마나 부드럽고 유연한가.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뒹구는 방 또한 얼마나 너그럽고 얼마나 말랑말랑한가.
우리는 네모 속에 산다. 그러나 네모는 자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린 네모난 집에서 네모난 길을 걸으면서도 네모로 살지 않는다. 동글동글 동그라미를 꿈꾸며 산다. 동그라미를 품고 있는 네모, 그래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