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새의 집- 김향남 수필가
2025년 04월 07일(월) 00:00
높이 솟은 나무 위에 새집이 하나 걸려 있다. 나무 위에 터를 잡기는 했어도 허공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높이만큼이나 아찔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정말이지 ‘걸려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저 집은,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건축물이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니 바람도 비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알을 낳고 새끼들을 기르기 위해서라면 지붕 정도는 있어야 할 터인데….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올려다본다. 새들도 제 가정을 일구느라 저리 애를 쓰는구나 싶으니 동병상련의 마음도 생긴다. 세상에 목숨 받아 분투하며 살아가는 꼴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연민하는 마음도 한층 깊어진다. 그러나 그 마음 뒤에는 늘 감탄과 부러움이 뒤섞인다. 새들에게도 집은 생존을 위한 안식처이자 사랑을 싹틔우는 보금자리이며 새 생명을 품어내는 요람임이 분명하나, 그들에게 집이란 인간의 집과는 확연히 다르다.

새의 집짓기는 진화도 발전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재료, 같은 공법으로 같은 집을 짓는다. 면적도 디자인도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물고 와 얼기설기 얽어놓을 따름이다. 도구라고 해봐야 제 몸뚱이뿐이다. 부리로는 나뭇가지 등의 자재를 운반하고 축조하며, 가슴으로는 쌓은 벽을 굳건히 다진다. 오롯이 제 몸과 제 힘으로 마련한 둥지에 신접살림을 차리고서 생명을 낳고 길러낸다. 다 자라면 미련 없이 떠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새집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저 새가 지은 집보다 더 알맞은 집을 짓지 못한다. 인간의 집이란 언제나 너무 크고 너무 많은 것을 늘어놓는다. 새는 제 몸에 딱 맞는 집을 짓고 그 안에 안정과 따듯함과 헌신과 사랑을 담는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다. 새는 누구도 부리지 않고 무엇도 훼손하지 않으며 가장 최소한의 필요만 취하고선 그마저도 훌훌 놓아버린다. 수없이 반복된 노동과 제 몸의 희생을 통해 얻은 새들의 둥지는 오직 생명을 키워내는 사랑의 보금자리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알을 낳고 품어 새 생명이 자라나는 일정 기간을 제외하면 누구도 그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무 위의 집은 지금 여기의 나를 저 유년의 그때로 되돌려준다. 새집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화려(?)했지만 알고 보면 흙과 나무와 풀로 엮은 집이었다. 새집이 그렇듯이 오직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써서 부모님이 손수 지으신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그곳에는 자나깨나 먹이를 기다리는 자식들과 묵묵히 먹이를 나르는 두 분이 계셨다. 사락사락 댓잎 흔들리는 소리와 적막을 몰아내는 닭 울음과 그리고 처마 밑의 제비들, 그 집에는 제비도 함께 살았다. 제비는 둥지 안에 알을 낳고, 알을 품고, 알 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했다.

제비 가족의 나날은 몹시도 소란스러웠다. 주둥이를 있는 대로 벌리며 아우성치는 새끼들과 그 속에 쏙쏙 먹이를 넣어 주는 부모가 종일토록 부산했다. 가끔 머리 위에 똥을 갈기면서도 내 눈치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둥지 안의 새끼들은 왜 그리도 당당한지, 멀리까지 먹이를 구하러 가는 어미는 어찌 그리도 헌신적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제비는 제비 새끼들을 기르느라, 인간은 제 자식들을 길러내느라 여념 없는 날들이었다. 한 지붕 아래 새와 인간이 나란히 살던, 그 자연한 공존의 풍경이 사뭇 그립다.

산책로 야트막한 언덕 아래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다. 최후의 보루처럼 아직 헐리지 않은 그 집은 유년의 집처럼 정답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웠다. 마당은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고 화단에는 푸릇푸릇 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동백나무 한 그루가 수북하게 붉은 꽃등을 매달고 옆에는 연둣빛 청매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나는 오래오래 그 집을 바라보았다. 햇살 가득한 마루에 걸터앉아 한껏 주둥이를 벌린 제비 새끼들을 쳐다보고 있거나 이 가지 저 가지로 후르릉 나는 참새떼, 통통 건너뛰는 까치들을 벅차게 올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오래전의 그 집에 다시 살러 온 사람처럼 마룻장의 온기를 쓸어보기도 하였다. 세상의 모든 안락과 안온과 평화가 그 집에 다 있는 듯 기껍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깊은 몽상에 젖어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엔 새집처럼 가볍고 소박한 꿈이 하나 사뿐히 날아올랐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43951600782259323
프린트 시간 : 2025년 04월 30일 15: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