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라는 우아한 기술 - 김해리 동신대 한의학과 2년
2025년 03월 25일(화) 00:00
대형 H&B(헬스앤뷰티) 브랜드의 마케팅 광고들을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했던 안티에이징(anti-aging) 이라는 용어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슬로우에이징(slow-aging) 혹은 웰에이징(well-aging)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대체되기 시작한 게 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변화인 ‘노화’를 반대(anti)하는 것에서 벗어나 드디어 이것을 인정하고 속도를 줄여보자(slow)는 합리적인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현대인의 관심사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지나 ‘어떻게 건강하게 나이 들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수명(lifespan)’이라는 투박한 기능성이 ‘건강수명(healthspan)’이라는 세련된 완성도를 더해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님이 소개하면서 주목받게 된 ‘저속노화’는 단순한 개인의 관심사가 아니라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저속노화란 말 그대로 노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진행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개념 정의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건강 상식이나 새로운 건강 관리 트렌드에 밝은 나는 저속노화 트렌드에 대해 알아가면서 단편적으로 쌓아왔던 지식들에 새로운 관점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노화를 외적,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 외에도 만성 질환과 기능 저하의 시작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는 단순한 나이 듦이 아닌 건강했던 세포와 장기의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며 눈에 띄지 않는 변화가 축적되어 어느 순간 만성질환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화로 인한 근육 감소를 방치할 경우 낙상과 골절, 결국 거동장애로 이어지고 체내 염증도의 점차적인 상승이 고혈압과 당뇨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인지하기 어려운 노화가 질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그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 저속노화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노화를 늦추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실천 전략을 3가지로 정리해보자면 (1)혈당 안정 중심의 식단 관리, (2)유산소 및 근력운동 병행, (3)수면 리듬 유지이다. 혈당 안정 중심의 식단 관리는 저속노화의 가장 핵심적인 출발점이다.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내리면 체내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가 유발되며 이는 세포 노화를 가속화하는 주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선택하고 단순당을 줄여야 한다는 건강 상식에 관해서는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혈당 안정을 위해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았는데 직접 경험한 것들 중 일상에서 적용하기 쉽고 효과적이었던 3가지 습관을 소개한다.

첫째, 식사 순서를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어떤 성분의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서로 음식을 섭취하는지 또한 혈당 급상승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대안이 된다. 실제로 코넬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임상실험에서 동일한 식사를 하더라도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섭취한 그룹이 탄수화물을 먼저 먹은 그룹에 비해 식후 혈당 상승폭이 최대 37% 낮게 나타났다.

둘째, 주 3회 지중해식 도시락을 구성하는 것이다. 지중해식 식단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심장협회(AHA)에서도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적인 식단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혈당 변동을 최소화하고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식이 패턴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도록 방울토마토, 병아리콩, 삶은 달걀, 아보카도, 호두 등을 준비했고 간식은 과일 대신 무염 견과류로 대체했다. 이는 단순당 섭취를 줄이고 식사 간 포만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저녁식사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한국인 영양조사 자료(2021)에 따르면 평균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7시 13분이지만 이를 6시 이전으로 조절해보자. 하버드 의대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저녁 6시 이전에 섭취한 경우 저녁 9시 이후 섭취한 경우보다 인슐린 민감도가 약 20% 높고 혈당 상승 폭은 평균 18% 낮았다. 또한 멜라토닌 분비 리듬과 더 잘 맞아 수면의 질이 약 25%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저속노화는 특정 제품이나 보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작고 반복 가능한 선택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단기적인 외모 관리가 아니라 내 몸의 활용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한 날을 위한 극적인 변화보다 평온한 일상을 가볍고 건강하게 보내는 멋진 힘을 위해 나만의 생활 기술을 조금씩 가꿔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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