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의 횡포 - 송민석 수필가·전 대학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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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순기능을 하였으나 어느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앱을 깔고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순간 SNS는 우리의 지배자가 된다. ‘좋아요’와 ‘싫어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와 전달 버튼을 클릭하면 할수록 공론장은 양 극단으로 치닫는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무제한 유통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기호에 맞는 정보만을 취하여 확증 편향은 커지면서 갈등이 증폭되어 간다. 최근 이런 확증 편향적 이념과 정보들은 정치권 및 사이비 종교 집단에 의해 확대되고 유튜브 미디어에 의해 그 편향성이 가속화되면서 사회를 편 가르기 하고 있다.
문제는 SNS의 역할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공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와 주장이 순식간에 진실로 둔갑해 대중을 선동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유튜브는 가장 강력한 대중 동원 수단이자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 국가다. 모두가 스마트폰 안에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시대다. 저질 언론사나 일부 유튜버들이 클릭 장사를 하기 위해 퍼뜨리는 과장된 기사나 가짜뉴스는 유통기한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런 사이비 지식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냉정한 사실 확인의 여과 장치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종이신문 구독이 아닐까 한다. 2022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 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종이신문 구독률은 9.7%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회 언론을 주도하는 여론 주도층은 모두 종이 신문을 본다는 사실이다. 필자도 40년 이상 종이신문 구독자다.
종이신문의 최대 장점은 독자가 원치 않거나 싫어하는 뉴스에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사마다 자신들의 정파성에 반하는 뉴스도 내보낸다. 어떤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보도는 비교적 충실히 하는 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다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하게끔 부추기는 알고리즘이 가세한다.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다. 요즈음엔 누구나 배달, 교통, 여행, 숙박, 금융, 교육할 것 없이 스마트폰 앱 검색을 통해서 결정한다. 인공지능이 개입되지 않은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튜브를 클릭하는 순간 관련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내 생각과 취향을 알고 뜨는 광고는 덤이다. 오직 좋아하는 것만 촘촘히 보여주는 알고리즘 세상이 되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나 인터넷 기술이 제공하는 가치를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그들의 행동이 비난받을 때마다 악성 댓글의 양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특정 쇼핑몰로 연결되는 광고성 글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 영상을 꾸준히 시청하는 대중은 획일성과 극단성으로 치닫기 쉽다는 게 요즘 시위 현장에서 목격하는 현실이다.
결국 인간은 자유의사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제안한 선택지에 의해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가끔은 페북 하는 시간을 줄여 신문과 잡지를 읽고 스마트폰을 잠시 끄고 여러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여 양극화의 편향된 시각에서 탈출하자. 스마트폰 화면을 하루 종일 스크롤 하는 중독을 줄여나갈 때 우리는 알고리즘이 쌓아 올리는 양극화의 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얄팍한 추세만 좇고 유튜브나 SNS와 편향된 특정 뉴스에 휩쓸리는 마음으로는 퇴행을 막을 수 없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고 한 이어령 선생의 말씀을 떠올릴 때다.
문제는 SNS의 역할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공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와 주장이 순식간에 진실로 둔갑해 대중을 선동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유튜브는 가장 강력한 대중 동원 수단이자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종이신문 구독이 아닐까 한다. 2022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 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종이신문 구독률은 9.7%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회 언론을 주도하는 여론 주도층은 모두 종이 신문을 본다는 사실이다. 필자도 40년 이상 종이신문 구독자다.
종이신문의 최대 장점은 독자가 원치 않거나 싫어하는 뉴스에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사마다 자신들의 정파성에 반하는 뉴스도 내보낸다. 어떤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보도는 비교적 충실히 하는 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다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 볼 수 있으며 그렇게 하게끔 부추기는 알고리즘이 가세한다.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다. 요즈음엔 누구나 배달, 교통, 여행, 숙박, 금융, 교육할 것 없이 스마트폰 앱 검색을 통해서 결정한다. 인공지능이 개입되지 않은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튜브를 클릭하는 순간 관련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내 생각과 취향을 알고 뜨는 광고는 덤이다. 오직 좋아하는 것만 촘촘히 보여주는 알고리즘 세상이 되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늘어나 인터넷 기술이 제공하는 가치를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그들의 행동이 비난받을 때마다 악성 댓글의 양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특정 쇼핑몰로 연결되는 광고성 글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 영상을 꾸준히 시청하는 대중은 획일성과 극단성으로 치닫기 쉽다는 게 요즘 시위 현장에서 목격하는 현실이다.
결국 인간은 자유의사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제안한 선택지에 의해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가끔은 페북 하는 시간을 줄여 신문과 잡지를 읽고 스마트폰을 잠시 끄고 여러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여 양극화의 편향된 시각에서 탈출하자. 스마트폰 화면을 하루 종일 스크롤 하는 중독을 줄여나갈 때 우리는 알고리즘이 쌓아 올리는 양극화의 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얄팍한 추세만 좇고 유튜브나 SNS와 편향된 특정 뉴스에 휩쓸리는 마음으로는 퇴행을 막을 수 없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고 한 이어령 선생의 말씀을 떠올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