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남향집’을 보고 싶다- 박진현 문화·예향담당 국장
2025년 03월 12일(수) 00:00
얼마 전 화순 출신의 고 오지호 화백(1905~1982) 탄생 120주년을 맞아 기획된 ‘오지호와 인상주의’전이 4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광양에 위치한 전남도립미술관 주최로 열린 이번 특별전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4만 여 명이 다녀갔다. 수십 여점이 내걸린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남향집’(1939년 작·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었다. 따스한 햇살과 대추나무의 푸른 그림자가 인상적인 그림은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국가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등재된 명작이다.



‘오지호 컬렉션’이 고향 떠난 까닭은

하지만 ‘남향집’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지난 1985년 오 화백의 유족들은 ‘남향집’, ‘처의상’ 등 그가 남긴 컬렉션 34점을 사회공헌차원에서 전남도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변변한 미술관이 없어 서울로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에겐 타향이나 다름없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현대미술관)이었다.

1982년 12월25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광주 지산동 초가집에서 세상을 떠난 오 화백은 대담한 터치와 화사한 색채감으로 한국적 인상주의의 전형을 창조한 선구자다. 특히 조선대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호남화파’를 배출했던 거장의 영면은 광주는 물론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더 큰 손실은 그가 남긴 작품들이 광주를 떠났다는 것이었다. 홍익대 등 전국의 내로라 하는 대학에서 수차례 교수로 초빙하려 했지만 광주를 떠나지 않았을 만큼 거장의 고향사랑은 각별했다. 이런 고인의 뜻을 받들기 위해 당시 유족들은 김창식 전남도지사(광주·전남 분리 이전)를 방문, 작품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돌아온 대답은 받아줄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었지만 당시 전남도의 경제적 여건상 ‘오지호 미술관’은 고사하고 작품을 임시 보관할 장소 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오지호 컬렉션’이 서울로 올라간 이후 지역 미술계는 지금껏 문화적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대표작들이 남도에 거의 없다보니 광주시립미술관(1992년 개관)이 한국미술사, 오지호 회고전 등 특별전들을 기획할 때마다 현대미술관에 간청해 오 화백의 작품을 빌려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 게다가 정작 생가터에 조성된 화순군의 오지호 기념관은 진품 1점 없는 ‘무늬만 기념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실제로 복제본들로 채워진 전시장을 둘러본 일부 방문객들은 기념관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에 ‘실망스럽다’ ‘헛발걸음을 했다’는 등의 쓴소리를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오지호 컬렉션의 ‘대우’다. 기증 당시 현대미술관측은 유족들에게 상설전시관 건립을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대다수 작품은 지하 수장고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고흥출신 천경자 화백의 작품 93점을 기증(1998년)받은 대가로 지난 2002년 미술관 2층에 상설전시실을 개관한 것과 대조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광주시와 지역에선 10여 년 전부터 현대미술관으로부터 오 화백의 작품들을 영구임대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전시장이 없다면 모를까, 번듯한 광주시립미술관이 있는 만큼 더 이상의 ‘타향살이’를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다. 절차상 영구임대가 어렵다면 ‘현대미술관 광주관’을 유치해서라도 상설 기획전을 통해 거장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이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 현대미술관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대미술관 광주관 유치돼야

최근 광주 문화계의 최대 숙원인 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국회의원(광주 광산 을)이 대표 발의한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을 권역별로 균형 있게 설립하도록 하는 법안’(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광주시가 추진 중인 옛 신양파크 부지 내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분관 건립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 예산안 심사에서도 지역 국립미술관 건립 타당성 연구를 위한 용역비 12억원을 확보해 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현재 현대미술관은 과천관·덕수궁관·서울관 등 수도권에 3곳, 청주관과 대전관(2026년 개관 예정) 등 중부권에 2곳이 설치됐거나 추진중이다. 만약 현대미술관 광주관이 건립된다면 전국 박물관·미술관의 지역간 문화향유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남권 유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대미술관의 퀄리티 높은 컬렉션을 지역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보편적 문화복지실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더욱이 현대미술관 분관 하나 없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타이틀은 외화내빈에 다름아니다. 바라건대, 머지 않아 광주에서 ‘남향집’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 봄은 그래서 가슴이 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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