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 다루고 싶었죠”
김동하 작가 판타지 장편 ‘그림자가 사라진 정오’ 펴내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상주작가로 활동...차기작 구상도
2024년 07월 29일(월) 11:00
김동하 소설가
“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슬픔을 온몸으로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소중하다고 여겼던 대상을 잃고도 비통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공허한 삶일까요. 슬픔이란 애틋했던 관계의 흔적일지도 모르지요.”

함평 출신의 김동하는 성실하면서도 진중한 소설가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창작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문학 행사나 문단 모임에 자주 모습을 비치기보다 말없이 작품을 쓰는 스타일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는 꾸준히 역사소설과 SF 소설을 써왔다. 혹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닌지, 아니면 창작 영역을 환상과 과학 쪽으로 넓힌 것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최근 김 작가가 ‘그림자가 사라진 정오’(NEON X SIGN)라는 판타지 소설을 펴냈다. 그림자와 슬픔을 거래한다는 다소 흥미로운 소재를 서사로 녹여냈다. 그는 “‘당신이라면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자를 팔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작품이 탄생했다”고 했다.

작품 발간 소식을 전하는 그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다. 헤어 스타일을 바꾼 것이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사람 좋은 인상이 묻어났다. 그를 볼 때마다 어떤 근기가 있어 저렇게 외롭고도 고달픈 소설가의 길을 뚝심있게 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마도 때가 되면 소설을 펴내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전업 작가의 존재 이유일지 몰랐다.

이번 장편은 지난 201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6번째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는 ‘달고나 여행사’, ‘한산: 태동하는 반격’, ‘독대’, ‘피아노가 울리면’, ‘운석 사냥꾼’ 등을 펴냈다.

김 작가는 “슬픔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며 “어른을 포함해 청소년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은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드라마틱하게 넘나든다. 때로는 순진무구한 세계를 그린 동화 같기도, 때로는 술술 읽히는 역동적인 서사 같기도 하다.

낯선 병실에서 의식을 차린 정오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빠진다. 그는 의식불명으로 있는 동안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게 됐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림자 상인이란 의문의 존재가 등장해 사람들의 그림자를 사 가고 있다는 것이다. 상인은 그림자를 사가는 대신 슬픔을 지워준다. 그림자 사내가 정오 앞에도 나타나는데….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인 말은 그림자 상인이 했던 다음의 말일 것이다. “정오 씨, 제게 그림자를 파시겠습니까? 동의하신다면 지금 느끼는 슬픔을 비롯해 앞으로 그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은 판타지적인 가상의 설정과 허구적인 내용들로 이뤄져 있지만 산사태와 지진이라는, 실제 있을 법한 재난 요소가 복선으로 깔려 있다”며 “집필을 시작하기 전 재난과 참사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특히 세월호 참사에 관한 유가족 인터뷰집과 기자단 기록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며 “영감을 얻기 위해 정동진 시계박물관에 견학을 가 취재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김 작가가 처음부터 판타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구상했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 뭘까 고민하다 판타지로 낙찰을 봤다고 했다.

“특별히 판타지라는 형식 자체로 인해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다만 재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판타지적 설정에 녹이려고 했기에 혹여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그가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중립성이다. “쓰고 있는 소설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는 객관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처럼 어려운 부분은 없지만.

‘전업 작가로서 어려움은 없느냐’는 물음에 김 작가는 “많이 읽고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는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상주작가로 있기에 일정 부분 직장인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차기작도 구상하고 있다”는 말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읽혀졌다.

그는 요즘 들어서 예전에 생각했던 소설에 대한 생각이랄까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 아마도 창작에 대한 변곡점이 왔는지 몰랐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몇 해 안 지났을 때는 소설이 첫사랑 같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친구 같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아요. 이 친구와 오래 함께 걷고 싶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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