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컬렉션을 아느냐
2024년 06월 26일(수) 10:20
정말이지, 소문대로 ‘골목지옥’이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중세의 도시다웠다. 구글맵을 켜고 나섰지만 좀처럼 행선지는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에게 물어서야 겨우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Peggy Guggenheim Collection)이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1898~1979)의 이름을 딴 곳이다.

흔히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본 사람들은 두번 놀란다고 한다.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은 소박한 외관과 글로벌 미술관들에 뒤지지 않은 화려한 컬렉션 때문이다. 아담한 저택을 리모델링해서인지 빼어난 건축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미술교과서에 나올법한 ‘문제작’들이다. 기자가 최근 다녀온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20~11월24일)의 빽빽한 취재일정에 이 곳을 넣은 건 그 때문이다.

변변한 이정표 하나 없어 ‘미술관 가는 길’이 고행이지만,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컬렉션이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베니스의 골목길을 헤매더라도, 작품 앞에 서면 저간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창립자인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 페기 구겐하임의 저택과 소장품이 모태가 된 곳이다. 미술관(Museum)이 아닌 컬렉션(Collection)이라는 ‘간판’을 단 것도 그런 이유다. 1750년대 이탈리아 건축가 로렌초 보스체티(Lorenzo Boschetti)가 지은 미술관은 베네치아 시내를 가로지르는 대운하와 인접해 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 간 이 곳에서 기거했던 페기 구겐하임은 타이타닉호 침몰로 사망한 부친에게서 거액을 상속받은 후 파리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을 통해 미술에 입문했다. 이후 1938년 런던에 ‘구겐하임 죈느 화랑’(Guggenheim Jeune)을 열고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을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 후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등과 교류하며 큐비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의 명작들을 손에 넣었다.

사실, 뉴욕현대미술관 등 내로라 하는 미술관들의 컬렉션은 페기 구겐하임과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좁다란 골목길을 헤매지 않아도 찾기 쉬운 도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파리 퐁피두센터나 빌바오 구겐하임처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랜드마크가 아닌 데도, 페기 구겐하임이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는 비결은 다른 게 아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컬렉션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베니스 비엔날레와의 시너지를 통해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문화도시들은 그에 걸맞은 특별한 뭔가를 지니고 있다.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화려한 랜드마크 기능이 있거나, 아니면 독보적인 콘텐츠를 자랑하거나. 그런 점에서 비엔날레의 개최도시인 광주는 베니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두 도시의 간극은 뚜렷하다. 콘텐츠의 경쟁력이다. 미술관의 힘, 나아가 문화도시의 품격은 컬렉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화·예향국장,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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