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톤즈에는 ‘순수함’과 ‘남을 돕는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
이태석리더십스쿨·이태석 재단 22명 남수단 톤즈 6박7일 봉사활동기
“섬김의 리더십 한 단계 더 이해하고 사랑·봉사 체험하고 돌아온 학생들 자랑스러워 ”
“걱정 반, 기대 반 출국길, 기쁨 반, 보람 반 귀국길”
2024년 03월 28일(목) 19:00
국립 주바대 의대에 재학중인 이태석 신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태석리더십스쿨 봉사자.
아프리카는 인류의 고향이다. 지금은 가장 빈곤한 대륙이지만, 인류는 그곳에서 기원했고, 서구 세계의 오늘 누리고 있는 풍족함은 상당 부분 아프리카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아시아 다음으로 큰 땅에 14억명 인구가 54개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하지만 약육강식의 현실에 농락당한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 남수단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빈곤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태석 신부님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우리에겐 생소했을 나라. 남한의 여섯 배에 이르는 면적에 1000만 명이 살고 있고, 석유가 나오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500달러에 불과한 곳. 수단과의 독립전쟁과 종족 간의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한 비극의 땅! 우리와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나라에 왜 우리는 가슴 먹먹한 감정을 갖게 되는 걸까?

톤즈 어린이들과 어울려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태석리더십스쿨 봉사자.
지난 2월 3일부터 9일까지 6박7일 간 이태석리더십스쿨 졸업생 15명과 이태석재단 관계자 등 모두 22명이 남수단에 다녀왔다. 이태석리더십스쿨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이태석재단이 2023년에 개설한 리더십 교육기관으로서 지난 해 3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8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이태석재단에서 강의가 이루어지며, 이태석 신부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을 학생들이 배우고 익히게 해 장차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강의는 각 분야에서 존경받는 리더들을 모셔서 영어와 한글로 진행되는데, 동시 통역을 제공하기 때문에 언어 장벽 없이 들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스웨덴 현직 5선 의원인 올레 토렐 의원, 미국 코넬대 스티브 스웨거 명예교수, ‘우크라이나의 쉰들러’라 불리우는 아르멘 멜리키안, 170 여 년의 역사를 지닌 덴마크 자유학교의 모흔스 교장, 44년 간 한센인들을 돌봐온 스페인 출신의 유의배 신부, ‘슬로우미러클’ 대표인 연세대 고광윤 교수, 100회 이상의 헌혈로 많은 생명을 구한 송영규 대전대 박물관장, 고위 외교관 출신인 김경호 교수 및 이태석재단의 구수환 이사장 등이 강의해주셨다.



◇이태석 신부의 ‘섬김의 리더십’ 체험한 남수단 봉사활동

이태석 재단·이태석리더십스쿨의 6박 7일간 봉사활동 참가자들과 기부 물품.
남수단 봉사활동은 이태석리더십스쿨의 핵심과정으로, 후원기업인 ㈜중헌제약에서 기부한 의약품, 학용품 등을 병원과 고아원 등에 전달하고, 잠깐이라도 그들과 함께 하면서 ‘섬김의 리더십’을 체험하게 하고자 기획됐다. 의료시설이라 불리기 어려운 상태의 보건소,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이 사는 고아원, 고아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빈민촌의 초등학교 등을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뛰어노는 또래들만 쳐다보는 소아마비 아이가, 천막으로 둘러쳐진 교실의 흙바닥에 아직 젖도 안 뗀 어린 동생을 안고 수업을 듣는 아이가, 부모를 찾으며 울기만 해서 아무도 달래주는 이 없는 천덕꾸러기 아이가 있었다. 즐거울 일 없는 그들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학생들은 오랜 시간 준비했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 조건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깨달아갔다. 섭씨 40도가 넘는 야외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다가 얼굴이 창백해지는 학생들을 말리기 위해 뛰어다니는 내 얼굴도 창백해져갔다. 그렇게 학생들은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체험해갔다.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태석리더십스쿨 봉사자.
한국에서 남수단 수도인 주바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두바이에서 환승하거나 에디오피아에서 환승해야 한다. 학생들을 인솔하는 나로서는 학생들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중요했기에 항공사 선택조차 신중했다. 사고가 잦은 보잉사 기종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기종을 보유한 항공사를 택했다. 사전에 황열병 접종과 말라리아 약을 복용시켰다. 복잡한 공항에서 길을 잃을지도 몰라 네 명 단위로 팀을 짜서 수시로 인원을 점검케 했다. 그럼에도 가끔 보이지 않는 학생들때문에 재단 관계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물론 화장실 다녀오거나 물마시고 왔다고 하여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국립 주바대학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들과 이태석리더십스쿨 학생들이 만난 일이었다. 도착한 날 주바공항에는 스무 명이 넘는 제자들이 마중 나왔고, 학생들은 마치 이태석 신부님이 직접 마중나온 것마냥 감격해했다. 재단에서 준비해간 신부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만난 제자들과 학생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워했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대화는 그치질 않았다. 한 여학생이 자신이 쓴 편지를 제자 가운데 한 명에게 전하며 울먹거리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마치 이태석 신부님을 만나 이야기나누는 것 같아서란다. 가슴 뭉클했다. ‘부활’의 의미가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은 방문 둘째 날 로보녹 초등학교 가는 길이었다. 주바에서 남쪽으로 80여 ㎞ 떨어진 로보녹은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도로와 차량상태 때문에 4 시간 가까이 걸린다. 기부물품을 실은 트럭, 학생들이 탄 소형버스, 승용차, 그리고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군용트럭까지 4 대가 함께 이동했다. 무장군인들이 따라나서자 학생들은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학생들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도 콩당콩당 뛰었으나 다만 드러낼 수 없었을 뿐. 가는 길에 무장반군을 만나는 건 아닌지, 불상사가 발생하는건 아닌지… 그런데, 기우였다. 차량은 커녕 사람조차 마주치지 않는 비포장 길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긴장감은 사라지고 사바나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찍기 바빴다. 몰래 기관단총과 군인들도 찍고.

그렇게 두 시간쯤 달리다가 학생들이 탄 버스가 멈췄다. 워낙이 폐차 직전의 차량을 수입해와서 고쳐가며 타던 차여서 언제 어디서 퍼져도 이상할 것 없는 버스였다. 버스기사는 자주 있는 일인 듯 엔진을 손보기 시작했지만 왜 고장이 났는지, 얼마나 걸려야 고칠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외진 곳이라 외부와 연락은 불가능했고 버스가 고쳐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무장군인들보다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로보녹에 갈 수 있는지가 아니라 주바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더 걱정하면서 기다린지 두 시간 째. 멀리서 트럭 한 대가 오고 있었다.

톤즈로 가는 길에 차량 고장으로 애로를 겪을 때 ‘이태석 신부의 선물’처럼 나타난 트럭.
30여 명이 짐칸에 올라탄 채 달리던 트럭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이게 뭐지?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던 길에 웬 대형트럭이? 이건 기적이야!’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엔도르핀이 솟구쳤다. 사정 따질 것 없이 우리를 로보녹까지 데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마침 그 트럭은 개학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로보녹으로 싣고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트럭 짐칸에 올라탔고, 재단 관계자들은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버스를 고치던 사이 학생들과 군인들이 친해졌었나 보다. 두통이 있던 군인에게 학생 한 명이 두통약을 주면서 서로 간에 말문이 틔었다고 한다. 절망이 희망으로,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로보녹 보건소와 초등학교에 기부물품을 전달하고 깜깜한 길을 달려 주바로 돌아가는 길에 여전히 멈춰서 있는 버스를 지나쳤다. 만약 트럭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트럭은 이태석 신부님이 보낸 선물이었음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석리더십스쿨 학생들은 ‘섬김의 리더’

구진성 이태석리더십스쿨 대표·이태석재단 이사
우리의 활동들이 알려지면서 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관료들이 우리를 초청했다. 부통령은 지난 10년 간 병원과 학교 등을 도와준 이태석재단과 중헌제약에 감사를 표했으며, 톤즈에 있는 이태석학교와 재단이 추진 중인 전쟁고아 후원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부통령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이태석재단과 섬김의 리더십을 소개했고, 난 그런 학생들에게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이태석리더십스쿨을 통해 훌쩍 커버린 그들은 이미 훌륭한 외교관이었고, 섬김의 리더였다. 나는 그들을 통해 교육의 성과를 확신했고, 이태석리더십스쿨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걱정 반, 기대 반의 출국 때와 달리 귀국길은 기쁨 반, 보람 반이었다. 힘든 조건에서도 봉사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것이 감사했고, 섬김의 리더십을 한 단계 더 이해하고 사랑과 봉사를 체험하고 돌아온 학생들이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많은 인원들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해준 재단관계자들과 함께 다녀온 구교산 미주국장, 김성미 감독, 이강윤 감독, 최은정 선생님, 서예림 팀장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섬김의 리더십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써왔고, 이태석리더십스쿨을 출범시킨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남수단 외교부 차관 면담 후 기자회견하는 이태석재단 구교산 미주국장.
이제 왜 남수단을 생각하면 가슴 먹먹한 감정이 생기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우리를 따뜻하게 했지만 이젠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과 ‘남을 돕는 선한 마음’이 아직 그곳에는 남아 있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이태석 신부님의 사연이 깃들은 땅이기 때문이리라!

<구진성 이태석리더십스쿨 대표·이태석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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