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일하겠다” - 김진구 광주교육시민협치추진단장
2023년 11월 29일(수) 00:00
비행기가 순조롭게 나아가는 것을 순항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 육중한 기체가 조는 듯 큰 미동 없이 하늘을 난다. 순항 앞뒤에는 이착륙이 있다. 비행기는 이착륙 과정의 11분이 매우 긴장된 순간이라고 한다. 조종사들은 11분 중에서 이륙의 3분에 온 신경을 쓰지만 착륙의 8분에 더 집중한단다. 이륙은 떠남이요 정리이다. 착륙은 만남이고 시작이다.

인간의 손가락은 다섯 개이지만 유독 엄지손가락은 다른 네 손가락과 차별성이 있다. 움직이는 방향이나 위치가 다르다. 네 손가락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에 마주할 수 없지만 엄지손가락은 이들과 마주 보고 있기에 견고하게 잡을 수 있고, 정교하게 물건을 만들 수 있어서 인류 진화를 촉진시켰다고 한다.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하거나 만나서 사랑의 하트가 되고, 저주와 비난의 표현이 되며, 주먹이 되기도 한다. 다섯 발가락은 모두 직립하고 걷는데 필요한 수평 관계이지만, 엄지손가락은 만남의 협업 관계이다.

만남은 우연이기도 하고, 숙명이기도 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한 부류는 자신의 성공이 자기 능력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부류는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행운이 깃들인 만남의 결과라고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 행운의 만남이 작용해서 성공하고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배려하고 세상을 관대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세모를 앞두고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특이하고 잊지 못할 만남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9월 광주시교육청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양성교육, 책임교육 등 7개 분과에 활동할 시민, 학생, 학부모, 교직원, 사회단체, 마을활동가를 모집했다. 190여 명이 활동하겠다고 신청했다. 말 그대로 광주교육에 관심있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분들이 조건이나 제약 없이 참여한 것이다.

첫날 분과별로 모여서 자기소개를 하고 대표를 선출하는데 중년의 시민 한 분이 옆자리에 있는 학생을 보면서 “기성세대보다는 MZ세대 학생이 우리 책임교육분과를 이끌어가보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추천하자 모두가 “그럽시다”면서 동의했다. 부대표는 내로라하는 마을교육활동가가 선출되었다. 각본 없이 순식간에 진행된 광주다운 대표 탄생이었다. 추천한 분도 혁신적이지만 이의 없이 동의한 위원들이 더 놀라웠다. 이름을 공개하면 우리 지역에서 알만한 분들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이 학생과는 이렇게 처음 만났는데, 15세 김평안(고려중학교 2학년) 대표이다.

나는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자발적으로 왔을까 아니면 누가 추천을 해줬을까. 만약 스스로 참여했다면 그 적극성과 참여 열정이 대단한 것이며, 혹시 부모나 학교에서 추천을 했다면 뛰어난 리더십이 있거나 출중한 능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학교 근처에 붙어있는 모집 현수막을 보고 광주교육협치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신청했다고 한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학생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동부초등학생의회 의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동부중학생의회 의장, 시교육청의 학생인권위원, 학교 방송부 등 특별하고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줌 회의나 카카오톡 투표로 일정을 조율하고, 유일한 학생 신분의 위원으로서 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365스터디룸과 맘 편한 화장실 조성, 진로진학과 신설, 학교자치 강화 정책이 좋게 생각되고, 보급된 태블릿 PC는 보안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여 ‘교육용’이라는 목적을 잃지 않도록 잘 관리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 분과에 참여한 10여 명의 어른들은 이 어린 중학생 대표가 학교생활과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조례에 근거해서 심의 기능이 있는 광주교육협치위원회 위원으로 교육감의 위촉장을 대표로 받은 최연소 학생, 그의 좌우명은 “내가 더 일하겠다”이다. 나는 이 만남을 계기로 김평안 위원을 곁에서 지켜보고 지지하면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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