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록관에서 만난 청년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11월 01일(수) 00:05
“괜찮으시면 인터뷰 때 옆에서 같이 들어도 될까요?”

난생 처음 보는 그가 말했다. 서울에 사는 그는 제주도를 거쳐 광주를 여행중이라고 했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10월 초 그를 만난 곳은 최재영 작가를 취재하던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전시실이었다. 최 작가는 지난 5월 아버지 최병오 사진 작가의 유품을 정리하다 1980년 5월 현장 사진을 발견, 137컷을 기록관에 기증했다. 조선대 미대 1학년이었던 그는 아버지와 함께 거리로 나갔었고, 기획전 ‘최병오, 최재영-1980년 5월 단상’전에서 5월 현장을 담은 회화 작품을 함께 전시중이다.

◇오월은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 작가가 해주는 작품 설명을 귀기울여 듣던 그의 모습은 전시장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곁에 앉아 경청했고, 발포 현장을 보았는지 등에 대해 묻기도 했다.

인터뷰 후 윤공희 대주교의 1980년 당시 집무실이 그대로 재현된 6층 공간으로 그를 안내했다. 광주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에 대한 설명도 했다. 예전에 이 곳을 찾았을 때 기록관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이 청년에게 오월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건 최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어제 시원한 분수가 물줄기를 뿜어내는 5·18 광장을 걸었다. 전날 이곳에서는 ‘옛 전남도청 복원 착공식’이 열렸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과정에서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 건물 일부가 철거·변형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복원이 결정됐다.

2025년 개관을 앞둔 옛 전남도청은 원형복원이 핵심이지만 콘텐츠도 중요하다. 1980년과 ‘똑같이만’ 재현된 공간은 아무 감동도 없다. 공간의 상징성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곳에 담길 이야기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 힘은 경계 없는 소통과 자유로운 발상에서 나온다.

광주 내부의 시선이 아닌, 외부자의 눈으로 오월 광주를 이야기해주길 기대하며 국내외 관계자를 초청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 등을 고백하는 그들은 한없는 부담감을 안고 작업을 하는데, 종종 오월 관계자들이나 광주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예술가들의 자기 검열은 상상력의 한계를 가져오고 작품 완성도에 치명타를 입힌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을 겪지 않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건 그 ‘보편성’에 있다. 역사적 사실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면 나는 오월과 관련한 코미디 작품이 나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월을 소재로 지금까지 생산된 문화예술 작품이나 콘텐츠는 그 세월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만난 광주시립발레단의 ‘디바인(DIVINE)’은 최근 몇 년 사이 관람한 콘텐츠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주 출신 주재만 안무가가 풀어낸 ‘디바인’은 오월 광주를 넘어 국내외 인간 삶 어디에나 존재하는, 슬픔과 위로를 어루만지는 ‘애도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오월 어머니들과 일반 관객들이 함께 읽고 녹음한 ‘소리 없는 목소리’전도 소박하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

◇옛 전남도청 복원이 성공하려면

전남도청 복원 소식을 듣고 올해 터진 오월 관련 단체들의 이전투구를 떠올렸다. 어쩌면 곪아 터져버린 부위를 제거하고 내 탓이로소이다를 외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 어느 단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걸 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행여, 이번 복원사업과 관련해서도 또 다시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월은 관련 단체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명심해야한다.

얼마 전 열린 충장축제를 친구와 함께 즐겼다. 이승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버스킹 공연과 드론쇼도 즐거웠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차가 다니지 않는 금남로 한복판에서 장기를 두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머리가 하얀 70대 할아버지와 20대 청년이 장기판을 앞에 두고 몰두하는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고 ‘우리’, ‘함께’라는 말도 떠올라 그만 뭉클해지고 말았다.

우리 ‘모두’의 것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만의’ 전유물이 되었을 때, 오월은 역사에서 흔적을 감춰버릴 지도 모른다. 혹평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고들 말한다. 우리 스스로가 오월의 주인이 될 때 5·18은 긴 생명력을 갖는다.

광주를 찾는 이름 모를 청년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며 오월에 대해, 광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 때 광주는 영원한 빛이 될 것이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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