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5·18 공법단체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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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광주의 것도 구속자, 부상자, 유가족의 것도 아니고 조국의 것이고 전체 시민과 민족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5월이 광주의 5월로 올바로 서야 진정한 전국화,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 윤한봉 선생이 1994년 5월 각계의 여망을 응축해 쓴 ‘5·18기념재단 창립선언문’이다. 그가 뼈와 살을 갈아넣은 창립선언문에는 5월 단체는 물론 광주 5월이 나아갈 방향이 담겨 있다.
새삼 5·18기념재단 창립선언문을 떠올린 이유는 최근 일부 5·18공법단체의 난맥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는 공법단체 출범 1년여 만에 횡령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내부 감사에서 공금 횡령과 후원금 무단 사용 등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갓 출범한 단체에서 ‘유령 부채’ 15억 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급기야 감사위원들이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소하는 지경이 됐다. 5·18부상자회에서도 기부금 착복 의혹이 제기되자 황일봉 회장은 “자체 조사 결과 특정 회원이 부상자회 기부금을 유용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구멍가게도 아닌 공법단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고 실현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집행부 갈등도 점입가경이다. 황 회장은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로 자신을 징계하려던 부상자회 상벌위원들을 직위 해제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상벌위원들은 직위해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반발하고 있다. 워낙 고소·고발, 소송건이 많아 일일이 꼽기도 힘들 정도다. 굳이 위안을 삼자면 모두 법적으로 가려질 일이다. 뼈아픈 대목은 5월 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이 싸늘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국가로부터 공법단체라는 법적 지위를 얻었으나 정작 시민 지지를 잃고 있는 것이다.
각종 횡령, 비리 의혹으로 ‘내홍’
5월 공법단체들은 최근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련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월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특전사동지회(특전사 예비역 단체)와 함께 발표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문’은 광주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전사는 광주항쟁 무력진압의 가해자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일원이다. 이들과 함께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서명한 공동선언문은 궤변 수준이다.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한 이들의 활동과 희생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한 공적 직무를 수행한 과정이었고 활동이었다. 즉, 우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활동을 민주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를 억압한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43년 전 상황에서 상부의 명에 복종하는 것이 불가피하였고 그 다수가 오늘날까지 오랜 정신적·육체적 아픔으로 점철해 왔던 점에서, ‘피해자’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와 5·18유족회, 5·18기념재단 등이 “사죄 표현조차 없이 만들어진 ‘공동선언문’부터 폐기하는 것이 사죄의 첫걸음”이라고 공분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광주 시민들의 분노를 응축한 대응이기도 했다. 공동선언문으로 촉발된 광주 시민단체와의 갈등은 5·18 행사위에서 5·18 공법단체들이 줄줄이 탈퇴하는 사태를 낳았다. 자칫 내년 5·18 행사도 5월 단체가 빠진 반쪽 행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부와 여당, 보수매체가 광주를 향해 해묵은 매카시즘 공세를 펼 때도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그들의 편에 섰다. 이들은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빨갱이 추앙’이라고 올가미를 씌웠다. 신군부가 ‘5·18을 빨갱이 폭동으로’ 낙인찍은 그 후유증이 지금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모양새가 됐다. 두 단체는 보훈부 관계자들이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공동 보조를 맞췄다고 한다. 5·18 단체장을 지낸 한 원로는 “애초 우려했던 5월의 관제화”라며 혀를 찼다.
5월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
어지러운 5월 단체의 행보를 보는 시민들은 명치 끝이 아프다. 5월에 대한 끊임 없는 왜곡·폄훼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5월 단체의 내부 붕괴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5월 단체와 시민들이 역량을 결집해 ‘5월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도 버거운 상황임에도 말이다. 5·18 진상조사위가 활동 종료시한 3개월을 남기고 내홍을 겪고 있음에도 광주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5월 단체의 혼돈과 무관하지 않다.
늦었지만 다시 5월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5월을 바로 세우는 길은 5·18기념재단 창립선언문에 오롯이 담겨 있다. “구속자, 부상자, 유가족들이 5월을 더럽히고 가신 임들을 욕되게 하고 광주를 부끄럽게 하고 시민들을 분노케 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80년 5월의 정신과 자세로 되돌아갈 것을 다짐하며 가신 임들과 7천만 겨레 앞에 옷깃을 여미고 섰습니다.”
고 윤한봉 선생이 1994년 5월 각계의 여망을 응축해 쓴 ‘5·18기념재단 창립선언문’이다. 그가 뼈와 살을 갈아넣은 창립선언문에는 5월 단체는 물론 광주 5월이 나아갈 방향이 담겨 있다.
각종 횡령, 비리 의혹으로 ‘내홍’
5월 공법단체들은 최근 시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련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월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특전사동지회(특전사 예비역 단체)와 함께 발표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문’은 광주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전사는 광주항쟁 무력진압의 가해자로 지목되는 계엄군의 일원이다. 이들과 함께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서명한 공동선언문은 궤변 수준이다.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한 이들의 활동과 희생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한 공적 직무를 수행한 과정이었고 활동이었다. 즉, 우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활동을 민주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를 억압한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43년 전 상황에서 상부의 명에 복종하는 것이 불가피하였고 그 다수가 오늘날까지 오랜 정신적·육체적 아픔으로 점철해 왔던 점에서, ‘피해자’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와 5·18유족회, 5·18기념재단 등이 “사죄 표현조차 없이 만들어진 ‘공동선언문’부터 폐기하는 것이 사죄의 첫걸음”이라고 공분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광주 시민들의 분노를 응축한 대응이기도 했다. 공동선언문으로 촉발된 광주 시민단체와의 갈등은 5·18 행사위에서 5·18 공법단체들이 줄줄이 탈퇴하는 사태를 낳았다. 자칫 내년 5·18 행사도 5월 단체가 빠진 반쪽 행사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국가보훈부와 여당, 보수매체가 광주를 향해 해묵은 매카시즘 공세를 펼 때도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그들의 편에 섰다. 이들은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빨갱이 추앙’이라고 올가미를 씌웠다. 신군부가 ‘5·18을 빨갱이 폭동으로’ 낙인찍은 그 후유증이 지금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모양새가 됐다. 두 단체는 보훈부 관계자들이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공동 보조를 맞췄다고 한다. 5·18 단체장을 지낸 한 원로는 “애초 우려했던 5월의 관제화”라며 혀를 찼다.
5월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
어지러운 5월 단체의 행보를 보는 시민들은 명치 끝이 아프다. 5월에 대한 끊임 없는 왜곡·폄훼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5월 단체의 내부 붕괴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5월 단체와 시민들이 역량을 결집해 ‘5월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도 버거운 상황임에도 말이다. 5·18 진상조사위가 활동 종료시한 3개월을 남기고 내홍을 겪고 있음에도 광주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5월 단체의 혼돈과 무관하지 않다.
늦었지만 다시 5월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5월을 바로 세우는 길은 5·18기념재단 창립선언문에 오롯이 담겨 있다. “구속자, 부상자, 유가족들이 5월을 더럽히고 가신 임들을 욕되게 하고 광주를 부끄럽게 하고 시민들을 분노케 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80년 5월의 정신과 자세로 되돌아갈 것을 다짐하며 가신 임들과 7천만 겨레 앞에 옷깃을 여미고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