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반찬으로 전하는 훈훈한 정 - 김진구 광주교육시민협치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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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식당을 잘 가지 않는다. 혼자 앉아서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계산하고 음식점을 나서는 과정이 힘들다. 반찬이 없어도 집에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식당의 포만보다는 끼니를 대충 때워도 집밥이 편안하다.
반찬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왔는데 외할머니가 외숙모의 눈치를 살피며 가져온 한 포기 김장김치를 잊을 수 없다. 비록 골마지(겉면에 생긴 흰 곰팡이류)가 낀 우거지 같은 배추김치였지만 푸른색 거친 시골 김치를 먹다가 부드러운 살구색의 도회 김치는 촌놈 기죽게 아삭했다. 한번은 잠깐 자취를 할 때 꽁치국이 먹고 싶어서 서석동 도떼기시장에 들러 꽁치 두 마리를 샀다. 어머니는 국을 끓일 때 쌀을 한 번 헹군 다음 뽀독뽀독 문질러서 그 뜨물을 활용했기에 나도 그렇게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습관처럼 뜨물을 버려버렸다. 맹물에 꽁치를 토막 내어 넣었는데 보기에도 맹탕이었다. 순간 꾀를 냈다. 곡기 대신 밀가루를 풀면 되겠다 싶어 한 숟갈 넣었는데 도통 뜨물 같지 않았다. 몇 숟갈을 넣자 희뿌연 뜨물같이 보였다. 그런데 푹 끓이고 보니 꽁치국이 아니라 밀가루풀 같은 꽁치죽이 되어 버렸다.
훗날 교사가 되어 사립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야간 근로청소년 학급을 십 수년간 맡았다. 대부분 신문배달 소년들이었는데 진도, 장흥, 고흥 등지에서 올라와 자취를 했다. 가정방문을 가면 반찬이 없다는 핑계로 굶는 일이 많았다. 한 끼라도 집밥을 먹이고 싶어 조를 짜서 학생들을 우리 집으로 가정방문을 오게 했다. 13평 주공아파트 살 때이다. 주 메뉴는 닭도리탕과 김치, 수북한 밥, 콜라였다. 밥상 앞에서 학생들은 간혹 눈물을 흘렸고, 내 어머니는 “느그 집은 먼 꼬추장을 그러케나 많이 먹냐”고 하셨다. 40~50년 전 일인데도 눈에 선하다.
광주시교육청에는 120여 명의 학부모들이 활동하는 ‘하모니’라는 모임이 있다. 등하교 지도, 우리아이 지킴이, 국제위기아동 지원 나눔장터 등 역동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 여름방학에는 ‘집 반찬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급식이 없는 방학 동안에 도움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직접 집으로 배달하는 일이다. 8월 초부터 맛살부침, 감자조림, 참치김치볶음 등 반찬 배달을 시작했는데 반찬을 받은 학교와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많은 언론과 단체에서 큰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 집반찬을 신청한 5개 초등학교마다 4가구 20명의 어린이들에게 8월 말까지 다섯 차례 추진한다. 전문 셰프의 도움을 받아 엄마와 자녀들이 다듬고 조려서 ‘맛있게, 행복하게, 즐겁게’라는 쪽지와 함께 집기에 담는 모습은 선한 인간의 진면목이었다.
거창한 일이 아니지만 한 끼라도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반찬을 학부모가 직접 해당 학교에 전달하고, 학교의 교육복지사가 학생의 집을 방문해 온기를 느끼도록 하는 과정이다. 반찬을 들고 조손(祖孫) 가정과 부자(父子) 가정을 방문해 냉장고도 정리하고 방학 중 아이의 생활도 확인해 보는 등 여러 측면에서 교육적 보람을 느끼는 사업이라며 복지사분들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집 반찬 만들기에 두 번 참여했는데 학창 시절의 반찬 추억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식재료를 다듬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기의 교단 현실도 떠올랐다. 절기도 녹이는 폭염(暴炎), 동복댐 식수 걱정을 비웃는 폭우(暴雨), 너클을 장갑처럼 끼고 장갑차가 배치된 거리를 누비는 폭인(暴人), 이 ‘3폭’ 시대에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아동복지법이 교사의 활동을 옥죄고 있다는 외침이 주말마다 가득하다. 이제 교육권, 생활지도권 등 교권도 확대하고 강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학생 인권 조례와 교권이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학부모와 교사에 해당하지만 관계 개선도 하고, 역할 재정립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집 반찬 사업이 거칠게 대립하는 교육 현장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바란다.
반찬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이 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왔는데 외할머니가 외숙모의 눈치를 살피며 가져온 한 포기 김장김치를 잊을 수 없다. 비록 골마지(겉면에 생긴 흰 곰팡이류)가 낀 우거지 같은 배추김치였지만 푸른색 거친 시골 김치를 먹다가 부드러운 살구색의 도회 김치는 촌놈 기죽게 아삭했다. 한번은 잠깐 자취를 할 때 꽁치국이 먹고 싶어서 서석동 도떼기시장에 들러 꽁치 두 마리를 샀다. 어머니는 국을 끓일 때 쌀을 한 번 헹군 다음 뽀독뽀독 문질러서 그 뜨물을 활용했기에 나도 그렇게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습관처럼 뜨물을 버려버렸다. 맹물에 꽁치를 토막 내어 넣었는데 보기에도 맹탕이었다. 순간 꾀를 냈다. 곡기 대신 밀가루를 풀면 되겠다 싶어 한 숟갈 넣었는데 도통 뜨물 같지 않았다. 몇 숟갈을 넣자 희뿌연 뜨물같이 보였다. 그런데 푹 끓이고 보니 꽁치국이 아니라 밀가루풀 같은 꽁치죽이 되어 버렸다.
거창한 일이 아니지만 한 끼라도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반찬을 학부모가 직접 해당 학교에 전달하고, 학교의 교육복지사가 학생의 집을 방문해 온기를 느끼도록 하는 과정이다. 반찬을 들고 조손(祖孫) 가정과 부자(父子) 가정을 방문해 냉장고도 정리하고 방학 중 아이의 생활도 확인해 보는 등 여러 측면에서 교육적 보람을 느끼는 사업이라며 복지사분들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도 집 반찬 만들기에 두 번 참여했는데 학창 시절의 반찬 추억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식재료를 다듬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기의 교단 현실도 떠올랐다. 절기도 녹이는 폭염(暴炎), 동복댐 식수 걱정을 비웃는 폭우(暴雨), 너클을 장갑처럼 끼고 장갑차가 배치된 거리를 누비는 폭인(暴人), 이 ‘3폭’ 시대에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또 하나의 아픔이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아동복지법이 교사의 활동을 옥죄고 있다는 외침이 주말마다 가득하다. 이제 교육권, 생활지도권 등 교권도 확대하고 강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학생 인권 조례와 교권이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학부모와 교사에 해당하지만 관계 개선도 하고, 역할 재정립도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집 반찬 사업이 거칠게 대립하는 교육 현장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