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달 스퀘어에서-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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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약 3주일간의 보스턴 체류는 나에게 큰 지적 충격을 주는 기회였다. 바이오제약산업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된 MIT대학 주변을 비교적 자세히 살펴보면서 과학적 연구 성과들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산업으로 전환되는 현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보스턴의 지적 중심은 하버드 스퀘어였고, MIT 주변은 각종 창고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후미진 뒷골목 같은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바이오 산업체들이 몰려들어 짧은 기간에 켄달 스퀘어가 생명과학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구글,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MIT 부속의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과학박물관 등을 10분 만에 모두 만날 수 있다. 유전자 및 정신심리학을 다루는 브로드연구소, 화이트헤드연구소, CIC 산학협력 스타트업센터 등이 줄지어 있고, 여기에 더하여 하버드대, MIT대, 매사추세츠 병원(MGH)이 공동으로 운영할 ‘생명과학의 미래의 집’이라는 라곤연구센터 건물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이곳에 투자된 금액은 20억 달러, 특허 5600개, 일자리 8만 2000여 개였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2022년에는 투자액 270억 달러, 특허 1만여 개, 일자리 1만 400개로 늘었고, 그 사이에 실험실 면적은 세 배로 증가했다. 세계 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바이오 혁신 생태계의 급속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최근 20년간 이 장소가 걸어온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4년 미국 최고의 공과대학의 하나였던 MIT의 연구자들은 새롭게 생명과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대학 주변에 연구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가 바로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2013년에는 생명과학의 연구 성과들을 상용화하는데 필요한 각종 실험들을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 랩 센트럴이 문을 열었다. 주 정부로부터의 약간의 기금과 이 분야 유수 기업들로부터의 후원금으로 설립된 이 시설에서 연구자들은 실험을 반복하면서 상용화의 길을 찾았다. 현재 이곳에는 약 50개의 예비 회사들이 입주하여 창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성과를 축적하여 독립해 나가는 것이다. 이곳에는 고가의 공동 실험 기자재들이 구비되어 있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1인당 하나의 책상만을 두고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 공간 바로 옆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행정 요원과 각 회사 대표들이 역시 책상 하나씩 두고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랩 센트럴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회사 K2B Therapeutics의 창업자인 보스턴 대학의 김 교수는 이곳에서 역동적인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근본적 요인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주었다. 첫째, 높은 수준의 풍부한 학술 연구, 둘째, 바이오 테크놀로지 창업을 위한 기업가 정신, 셋째 초기 스타트 업에 필요한 비용과 고위험 분산, 넷째, 경험이 있는 고급 노동력의 공급, 다섯째,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실험 시설과 장비 등이었다.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보스턴이 이런 요소들을 잘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실리콘 밸리뿐 아니라 보스턴의 바이오 혁신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고 심층적 검토를 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오래전부터 반도체산업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21세기 주도 산업을 생명과학과 인공지능(AI)에 의존해야 한다는 잠정적 합의가 있었고, 그 일환으로 지난 4월 말, 한국 대통령이 국내 주요 의생명분야 지도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지만, 과연 의미 있는 정책으로 연결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조성한 의생명산업단지에는 이를 이끌어갈 핵인 대학과 병원이 없고,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과 병원은 여전히 진료 중심의 압박에 벗어나기 어려우며, 의생명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주변 공간이 별로 없다. 생명과학 외부의 철학적 사회과학적 역량과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성패의 핵심은 국내 최우수 대학의 연구 역량과 병원, 그리고 혁신적 의생명산업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다. 대학내외의 과도하게 구획되어 있는 연구 실험 공간 구조를 뛰어넘어 켄달 스퀘어처럼 일상적 개방과 협력이 가능한 미래 실험 공간의 창출, 이것이 우리의 대학 개혁의 방향, 나아가 의생명산업의 미래의 좌표가 되어야 한다.
랩 센트럴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회사 K2B Therapeutics의 창업자인 보스턴 대학의 김 교수는 이곳에서 역동적인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근본적 요인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주었다. 첫째, 높은 수준의 풍부한 학술 연구, 둘째, 바이오 테크놀로지 창업을 위한 기업가 정신, 셋째 초기 스타트 업에 필요한 비용과 고위험 분산, 넷째, 경험이 있는 고급 노동력의 공급, 다섯째,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실험 시설과 장비 등이었다.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보스턴이 이런 요소들을 잘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실리콘 밸리뿐 아니라 보스턴의 바이오 혁신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고 심층적 검토를 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오래전부터 반도체산업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21세기 주도 산업을 생명과학과 인공지능(AI)에 의존해야 한다는 잠정적 합의가 있었고, 그 일환으로 지난 4월 말, 한국 대통령이 국내 주요 의생명분야 지도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지만, 과연 의미 있는 정책으로 연결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조성한 의생명산업단지에는 이를 이끌어갈 핵인 대학과 병원이 없고,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과 병원은 여전히 진료 중심의 압박에 벗어나기 어려우며, 의생명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주변 공간이 별로 없다. 생명과학 외부의 철학적 사회과학적 역량과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성패의 핵심은 국내 최우수 대학의 연구 역량과 병원, 그리고 혁신적 의생명산업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다. 대학내외의 과도하게 구획되어 있는 연구 실험 공간 구조를 뛰어넘어 켄달 스퀘어처럼 일상적 개방과 협력이 가능한 미래 실험 공간의 창출, 이것이 우리의 대학 개혁의 방향, 나아가 의생명산업의 미래의 좌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