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과 책방지기 - 심명섭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 순회 사서
2023년 07월 26일(수) 00:00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독자들의 도서 구매 패턴이 대형 서점과 인터넷으로 고착화되면서 상당수의 오프라인 서점이 수익 악화를 겪어야 했다. 그중 일부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휴·폐업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엔데믹과 함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동네 책방들이 우후죽순처럼 문을 열고 있다는 다소 생경한 뉴스도 전해진다. 이는 지역 서점 인증제, 우선 구매 제도의 정착, 문화 행사 지원 확대와 함께 지역 책방이 단순히 도서 판매를 위한 공간을 넘어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독자와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5일에는 애서가로 알려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서 ‘평산책방’ 개점 현판식이 열렸다. 이 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 책방, 도서관 문화를 확산하고 문화예술과 관련된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책방지기로 일하며 ‘평산책방’이 저자와 독자가 만나 토론하는 공간, 마을 주민 휴식 공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책방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를 말하는데 이와 비슷한 단어로는 서점, 서간, 서림, 서사, 책사, 책전, 책점 등이 있다. 이처럼 많은 의미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단연 책방과 서점이다. 이와 같이 책방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묶어 대량 생산한 도서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장소’로서,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책을 상품으로 제공하여 판매하는 도서 유통 거점의 역할을 하는 공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책방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470년(성종1) 한명회가 승정원 교서관에서 책을 팔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책방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서사와 국가에서 운영하는 서사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민영의 서사는 민간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책을 간행하여 팔던 곳을 말한다. 이와 더불어 관영 서사는 교서관 한 곳에서만 판매하는 수량만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서, 책의 보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 민간에게도 서적을 판매하는 서사를 인가하였다고 한다.

영조실록에는 1771년 특별한 영업 전략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아 조선 제일의 책 장수로 불린 조생이 등장한다. 책 속의 지식이 권력이 되던 시대에 지식을 나누는 것을 거부하던 조선의 지도층 아래, 민간 서점이 거의 없었던 당시 조선에도 책을 유통하던 주역이 있었던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서적 중개상 이른바 책쾌조생이다. 옷소매 속에 책을 넣고, 때로는 보자기에 쌓아 들고 다니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파하는 문화 전령사 역할을 했던 책쾌의 활동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이후까지 이어지다가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1960년대에 이르러 사라졌다고 한다.

동네 책방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책방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적 감성을 선사하는 지역책방의 다채로운 매력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구매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담은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책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곧 문화이자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사람들을 집결시킴으로써, 지역 사회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 주인을 우리는 ‘책방지기’라 부른다. 이 동네 책방의 가장 큰 특징은 책방지기의 운영 방식이며 이는 곧 책방의 정체성과 특성으로 연결된다. 책방지기의 취향과 기획 의도에 따라 공간 구성은 물론 책의 종류, 북 큐레이션, 각종 프로그램 등 구성하는 요소들이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다. ‘동네 책방’이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뛰어넘어 책방 속 다양한 요소들이 독자들에게 문화적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여, 그들의 감각과 정서 자극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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