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나고 난 뒤 - 박진현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2023년 07월 19일(수) 00:00
20대 중반의 직장인 C는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게 취미다. 근사한 분위기의 카페나 소문난 맛집을 앵글에 담기 위해 장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인생샷’을 찍는 노하우도 생겼다. 그런 그녀가 지난달 그동안 벼려온 광주비엔날레(4월7~7월9일)를 관람했다. 미술애호가는 아니지만 멋진 사진 한컷을 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C의 야심찬 계획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독특한 구도로 촬영하기 위해 작품 앞으로 다가 갈때마다 번번히 제동이 걸린 것이다. 전시장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이 작품 훼손을 우려해 손사래를 치며 저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두운 전시장 바닥에 흙을 뿌려 놓은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작품 ‘영혼강림’ 앞에선 초긴장해야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흙을 밟으면 안된다’라는 자원봉사자의 목소리에 조심하다 보니 작품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젊은 관객 열광한 블록버스터전

물론 작품 보호를 위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은 당연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돌발 행위는 자제시켜야 한다. 하지만 C의 지적처럼 비엔날레 재단의 지나친 통제로 ‘위축된’ 분위기에서 전시를 감상하기 힘들었다는 관람객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깐깐한’ 비엔날레와 달리 ‘인증샷’으로 재미를 본(?) 대형전시들이 있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서울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We’전과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길위에서’전(4월20~8월20일)이다. 두 전시는 자신의 일상을 SNS에 올리는 MZ세대의 ‘인증샷 문화’를 겨냥해 ‘사진 맛집 전시회’ 등의 홍보 전략을 내세워 20~40대 관람객들을 불러 모았다.

이 가운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무제’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포장용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나나를 한 대학생이 먹어 치워 논란이 된 ‘코미디언’은 작가와 미술관측이 문제를 삼지 않기로 하면서 더 화제가 됐다.

이처럼 카텔란전이 주목을 끈데는 글로벌 작가의 전시를 무료로 기획한 미술관의 배려가 컸지만, 미술시장의 주역으로 등장한 MZ세대들을 적극 끌어 들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실제로 26만명을 동원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전은 20대가 28%로 가장 많았고 30대(24%)와 40대(23%)가 그 뒤를 잇는 등 MZ세대가 75%를 차지했다. 누적관람객 20만 명을 돌파한 ‘에드워드 호퍼’전 역시 젊은층이 대거 찾고 있다.

이들 전시가 20~40세대와 통할 수 있었던 건 기획력 덕분이다. 현대미술의 주관객층인 젊은 관람객들의 트렌드에 맞춰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시회를 그들만의 방식대로 ‘즐기도록’ 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사진을 찍어서 SNS에 공유하는 MZ세대의 문화에 주목해 1층 아카이브 전시장을 ‘오픈’해 누구든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94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9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 19 이후 최장기간의 국제미술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올해 비엔날레는 이슈메이킹이나 흥행, 전시구성 등에서 차별화된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술현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 재단의 매너리즘이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1995년 창설된 이후 올해로 14회째를 맞았지만 전반적인 운영 매뉴얼은 시대의 트렌드에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30년이 흐른 지금의 미술시장은 MZ세대가 주역으로 떠오를 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근래 예술과 전시 관람을 즐기는 젊은층이 늘면서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테크족’이 늘고 있는 게 그 반증이다. 또한 비엔날레와 유사한 콘셉트의 현대미술전시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반드시 광주에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등 미술계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이 광주비엔날레 기간에 비슷한 주제인 ‘기후’를 테마로 개최한 ‘시네미디어-영화의 기후’(4월6일~8월6일)전이 대표적인 예다.



창설 30돌 광주비엔날레의 선택은

내년은 광주비엔날레가 창설 3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다. 강산이 세번이나 변한 시간이지만 아쉽게도 비엔날레 위상은 아트페어 등에 밀려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메가 미술이벤트를 연계한 광주시의 문화마케팅 부재는 뼈아프다. 부산시가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부산 방문에 맞춰 부산시립미술관의 일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전’(무라카미 좀비)를 연장하는 등 타 도시의 ‘역동적인’ 대응과 비교된다.

하지만 아직 광주에게는 기회가 있다. 30주년을 계기로 전시, 조직, 운영 등 대대적인 혁신을 꾀한 다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미술축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이젠 비엔날레 개최지라는 이유로 국제미술도시를 운운하는 건 멋쩍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광주비엔날레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해야 할 출발선에 섰다. 미술시장의 달라진 지형, 비엔날레와 연계한 시너지 효과, 30주년에 걸맞은 재단의 운영 등 미래 지향적인 로드맵을 ‘리셋’해야 한다. “광주는 왜 비엔날레를 하는가.” 언제부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회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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