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전라도 천년사’의 역사관
2023년 05월 25일(목) 00:00
지난 5월 17일 일본 도쿄의 학사회관(學士會館)에서 한일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학사회관을 운영하는 학사회(學士會)는 일본 제국대학 출신들이 회원으로 운영하는 단체다. 도쿄 제국대학, 교토 제국대학 등 일본 내의 7개 제국대학과 서울에 설치했던 경성 제국대학과 대만에 설치했던 타이페이(台北) 제국대학 출신들이 회원이다. 일본에서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가 기조 강연을 했고 한국 측에서는 필자가 기조 강연을 했다.

필자는 현재 한일 두 나라 정부 사이는 좋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현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한국인들은 아주 낮은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는 이유는 제국주의 시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일본은 물론 한국의 역사학계도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학과 단절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서기’를 보면 663년 백제 부흥군의 수도가 함락되자 야마토왜(大和倭)의 지배층들이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그곳을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겠는가?”고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이 사례를 들면서 “야마토왜인들은 백제의 멸망을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나라, 곧 본국(本國)의 멸망으로 여기고 한탄했다”고 말했다.

백제는 본국이고 야마토왜는 백제가 일본 열도에 세운 분국(分國)이었다. 대륙과 반도와 열도를 아울렀던 대제국 백제의 틀 속에 야마토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를 거꾸로 우기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필자는 “인류 이동의 역사는 대륙에서 반도나 해양을 거쳐 열도(列島)로 이어집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고대 문명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제국주의 역사학이 거꾸로 주장하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필자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 시절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1873~1961)나 이미니시 류(今西龍:1875~1932) 같은 역사학자들이 이 흐름을 거꾸로 왜곡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쓰다 소키치 등은 일본 민족은 외부에서 도래한 것이 아니라 일본 열도에서 자생했고 이들이 나라(奈良)에 야마토왜를 세웠다고 주장했습니다. 외부에서 건너온 것을 열등(劣等)한 것으로 여기는 제국주의적 관점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고대 국가가 세토내해와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국 일본(日本)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고대사의 복원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침략 전쟁에 이용했습니다. 물론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라도 천년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등이 만든 황국사관(皇國史觀), 곧 ‘야마토왜 중심 사관’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관은 일본 열도에서 자생한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전라도 천년사’가 바로 이 사관에 따라서 고대 전라도를 왜의 식민지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일본은 물론 한국의 이병도, 신석호 등과 그 제자들이 역사학계를 장악해 제국주의 역사관을 계속 전파하고 있는 것이 한일 화해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은 현재 역사학계를 장악한 역사학자들과 한국사를 사랑하는 일반 국민들이 서로 적대적인 전 세계 유일한 국가입니다. 지금도 한국 내 곳곳에서 이런 역사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 역사학자들과 싸우면서 그 배경을 의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측에서는 현 중의원 의원과 교육상을 역임한 유력 인사들이 참석했다. 필자 강연의 요지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횡행하고 있는 제국주의 역사관을 버리고 실제 역사 사실에 바탕한 역사 교류를 한다면 진정한 관계 개선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도쿄 한복판에서 확인한 심포지엄이었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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