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5월 22일(월) 00:00
야스이 세이이쓰(谷井濟一)는 1917년 나주 반남고분을 발굴한 식민 사학자다. 그의 행적은 2015년 정인성 영남대 교수가 재조명하기도 했다. 터무니 없는 신공황후 삼한 정벌설과 임나일본부와 관련된 고고 자료를 찾기 위해 반남고분을 기획 발굴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정 교수가 지난 20일 (재)호남문화재연구원 연속 강의(‘고고 자료를 통해 본 고조선과 낙랑군’)에서 야쓰이를 다시 소환했다. 정 교수가 입수한 야쓰이의 자료에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자료가 포함돼 있다. 눈길을 끄는 사안은 야쓰이가 1913년 중국 현지 조사에서 탁본업자를 면담한 결과다. 메모에는 ‘풍화로 비석 표면이 훼손되자 1900년대부터 석회를 계속 바르고 글자를 임의로 새겨 넣었다’는 업자의 진술이 야쓰이 친필로 적혀 있다. 일제가 자행한 비문 변조는 널리 알려졌지만 변조자의 증언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정 교수는 “탁본업자가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는 광개토대왕 비문 문구를 참조한 정황이 있다. 재일사학자 이진희 씨가 제기한 비문 변조설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본이 변조됐다면 경위를 추적해 지금까지 연구나 논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봐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야쓰이 자료에는 광개토대왕비를 촬영한 사진 18장도 포함돼 있지만 정작 신묘년조(辛卯年條) 내용이 없다. 이른바 ‘왜(倭)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일본 학자들이 해석하는 문장이다. 일본은 이를 4세기 말부터 한반도 남부를 예속했다는 식민 사학에 활용했다. 반면, 우리 학계는 “왜가 신묘년에 고구려에 왔으므로 고구려는 바다를 건너 왜를 쳐부쉈다. 백제가 왜를 불러들여 신라를 침략,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정 교수는 “식민 통치의 역사적 근거를 찾기 위해 혈안이었던 일제가 신묘년조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것은 비문에서 원문을 찾을 수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역사의 기념비로 통하는 광개토대왕비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정 교수의 자료 발굴을 계기로 광개토대왕비의 실체에 접근하는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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