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탄 공장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05월 16일(화) 00:00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의 아찔했던 기억 한 토막을 떠올려 본다. 셋방으로 이사한 당일, 마당에 나왔다가 현기증을 느끼고 뒤돌아 몇 걸음을 걷다 그만 쓰러져 버렸다. 요행으로 땅바닥에 놓여 있던 양철 대야 위로 넘어졌다. 안면부의 충격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이때 특효약이라는 동치미 국물을 마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대낮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불귀의 객이 됐을 것이다.

연탄은 나무를 대체하는 유용한 연료였다. 나무보다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력이 좋았지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치명적이었다. 1959년 무렵부터 연탄가스 중독사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정들은 본격적인 동장군이 닥치기 전, 부엌 한쪽에 수십~수백 장의 연탄을 주문해 쌓아 두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취재를 위해 석탄을 캐는 화순탄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갱도의 마지막 끝인 막장에 이르자 수증기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부 공기를 끌어들이면 광부들이 착암기로 석탄을 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절로 얼굴이 새까매졌다. 지난해 12월 타계한 고(故) 조세희 작가의 ‘침묵의 뿌리’(1985년)를 읽다 보면 탄광촌 어린이가 새까만 얼굴을 한 ‘산업 역군’ 광부 아버지를 묘사한 글귀가 인상적이다. “나는 언제나 까맣게 화장하시는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광주 지역에 마지막 남은 남선 연탄 공장이 운영난으로 다음 달 가동을 중단한다. 1954년 문을 연 이후 69년만이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연탄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연탄 공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만 해도 광주에 일곱 개의 연탄 공장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2021년 전국 연탄 사용 가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연탄 사용 가구는 8만 1721가구에 이른다. 광주 1402가구, 전남 4692가구, 전북 4498가구는 여전히 연탄을 필요로 한다. 비록 광주의 마지막 연탄 공장이 문을 닫지만 70여 년 동안 서민들의 애환을 같이 했던 연탄의 ‘온기’마저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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