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의 탄생-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3년 05월 08일(월) 00:00
해외에 있는 친구로부터 반가운 안부 문자를 받았다. 한국과 관련한 보도를 보고 내 생각이 났다며 링크도 함께 보내주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관련 보도는 남북한 관계나 정치적 정황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근래 한국의 경제적 우위와 K-문화의 소프트 파워 덕분으로 우리 사회의 동향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보도가 늘어났고 그들 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모습이 한층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보도 내용은 기대와 달리 섬뜩했다. 독일의 뉴스채널인 n-tv는 한국의 심각한 인구 문제 현황에 대해 과거 한국이 시행해 온 인구 제한 정책에서부터 최근 발표한 자료를 인용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정부의 재정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0.78이라는 저출산율로 막다른 인구 절벽에 서 있는 현재의 상황과 집값, 사교육비, 여성의 사회 진출 등 그 결정적 원인들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 유례없이 빠른 인구 소멸 현상으로 세계 외신들이 우리 나라의 저출산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도 저출산과 1인 가구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초저출산율은 지금껏 보지 못했으며 근본적으로 가족 구성에 대한 사회 의식의 변화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보았다.

30대인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묻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결혼을 꿈꾸던 그가 주변 친구들의 경험담을 통해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1인 가구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비혼을 선호하는 사람과 만나 동등한 관계로 함께 살기 바라고 혼외 출산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지만 자신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현실적으로 법적 혼인의 성사 없이 집 마련을 위한 대출이나 출산과 양육에 관한 제도적 혜택을 받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가족의 반대와 사회적 무시나 차별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비혼 상태에서 혼외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가정이 많다. 한때 심각한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던 프랑스는 이제 인구 감소 걱정을 내려 놓았다. 과거 왕권 국가 시대부터 가족을 지원하던 제도가 있었던 프랑스는 그 오랜 전통으로 가족을 국가 정책의 핵심에 두어 왔다. 시대 변화에 맞춰 의식의 개선과 저출산율을 극복하는 정책들을 마련하고 지원하는데 힘써온 결과, 출산율을 적정한 상태로 유지하는데 성공한 대표적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외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다양한 가족 구성을 장려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함으로써 적정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결혼은 가족을 이뤄내는 가장 아름답고 든든한 제도로 인식되어왔다. 오랜 관습이나 제도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변화해 왔듯이 이제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해 이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무조건 이기적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속한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라는 가부장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비혼 출산과 이혼 후 자녀 양육 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시대적 염치가 없는 일이다.

결혼과 출산은 개개인의 선택이기에 기성세대는 그들의 가치관에 대해 강요하기보다는 존중하고 그들이 선택한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응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출산 또는 혼외 출산을 원하는데도 경제·사회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이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더욱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그들을 돕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이는 지역의 소멸과 인구의 감소를 막기에는 미약하더라도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위한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결국 가족의 의미 확장을 통해 출생율을 높이고 가족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지금 당장의 인구 문제만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족의 탄생이야말로 개인의 삶을 건강히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자 나아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지속가능하게 유지시켜주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껏 그 짧은 시간 안에 경제적 성공과 민주화를 이뤄낸 저력이 있다. 이 모두가 힘든 역경속에서도 한국인의 연대 의식을 역동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전격적인 의식의 변화와 개혁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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