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리모델링’이 흥(興)하려면
2023년 04월 19일(수) 00:30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 자락에 들어선 고양아람누리(이하 아람누리)는 전국구 공연장이다. 인구 107만 명의 신도시이지만 서울의 내로라 하는 대형 공연장이 부럽지 않다. 국내에선 드물게 오페라극장, 콘서트홀, 야외극장을 갖춘 3대 공연예술센터로 2008년 개관과 동시에 96개의 기획작품을 선보이며 60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실제로 7년 전, 아람누리에서 본 ‘한낮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평일 점심 시간인데도 공연장의 레스토랑과 커피숍은 40~60대 주부들로 활기가 넘쳤다. 알고 보니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클래식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도착한 ‘열공생’들이었다. 얼핏 보면 공연장이라기 보다는 문화사랑방 같았다. 당시만 해도, 광주에서 공연장은 음악회가 열리는 저녁에나 찾는 곳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난 2019년 12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 때아닌 수제 맥주가 등장했다. 송년 기획공연인 ‘인디학 개론’에서 관객들에게 맥주 반입을 허용한 것이다. 국내 공공극장에서 최초로 시도한 ‘깜짝 이벤트’는 젊은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후 가장 ‘역사적인 날’로 기록된 음식물 반입은 이후 일부 기획공연에 맥주와 팝콘, 콜라가 등장하면서 공연계의 뉴스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이같은 공연장들의 파격 행보는 다양한 관객층을 극장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다. 낮시간대 강좌와 토크 콘서트를 통해 중장년층을 클래식 세계로 안내하는 가 하면 금기였던 식음료 반입을 뮤지컬, 연극 공연에 한해 허용하면서 MZ세대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광주문예회관이 2년3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오는 6월 시민들 곁으로 돌아온다. 291억 원을 들인 보수 공사를 통해 노후화된 대극장, 소극장을 업그레이드 하고 공연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장면 연출과 무대의 빠른 전환이 가능한 시설을 갖췄다. 그럼에도 고난이도의 무대세팅이 요구되는 오페라 공연은 현 문예회관의 구조상 한계에 부딪혀 야심차게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추진했던 ‘오페라의 유령’이 불발됐다. 당초 장르별 전용 극장이 아닌 다목적 공연장으로 설계된 만큼 예견된 결과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개관 32년만에 명품공연장으로서의 출항을 앞두고 있지만 달라진 ‘스케일’에 걸맞은 역량 있는 조타수가 없기 때문이다. 2년 여에 걸친 리모델링 기간 동안 문예회관을 이끌 수장들이 잇따라 건강상을 이유로 사의를 표하거나 휴직에 들어가면서 현재 관장 자리가 공석상태다. 문예회관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광주시는 최근 전문성을 갖춘 개방형 관장을 공모하기로 하고 임용절차에 착수하기로 했지만 역량있는 인물을 영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1세기 공공극장은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발전소다. 광주문예회관의 리모델링이 통하려면 시설 못지 않게 품격있는 콘텐츠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필수다. 개관 1년만에 ‘꿈의 무대’로 변신한 아람누리의 비결은 기획력이었다. 제2의 출발선에 선 문예회관의 리더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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