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졌다...양봉농가의 한숨
광주·전남 양봉농가 가보니
60% 실종…텅 빈 벌통 피해 극심
동시다발 개화로 꿀 모으기 어려워
15만원 벌통, 40만원 상승 이중고
빈 벌통 태우다 함평 산불 내기도
양봉협회, 집단 폐사 대책 촉구
2023년 04월 05일(수) 20:30
양봉 농민이 지난달 31일 담양군 수북면에 있는 꿀벌 농장에서 텅 비어있는 벌집틀을 손에 들고 있다.
올해 들어 광주·전남 지역 꿀벌 60%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은 꿀벌 가격이 오른데다, 기후변화로 전국에서 꽃이 동시에 피면서 양봉업계는 현재 ‘고사 직전’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꿀벌 구매 비용 지원을 늘리기로 했지만, 농민들은 전반적인 양봉산업에 대한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5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올해 광주지역 꿀벌 농가 168곳 중 90% 이상인 156곳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벌통 2만통 중 62%에서 꿀벌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2만통 중 38%가 피해를 입어, 피해규모가 1년여 만에 1.6배 이상 증가했다.

전남도의 피해 상황도 심각하다. 올해 전남 지역 꿀벌 농가 2169곳 중 94% 이상인 2042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전체 벌통 26만 7000통 중 60%인 16만 통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피해가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피해규모가 1.6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달 31일 방문한 담양군 수북면에 있는 김남중(52)씨의 꿀벌은 ‘전멸’한 수준이었다. 빈 벌통들이 한곳에 쌓여 있었고, 곳곳에는 태워버린 벌집틀들이 널려 있었다.

김씨는 “1000통 규모의 꿀벌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꿀벌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현재 20통 정도만 남아있는 상황이다”며 “20여년동안 꿀벌 농사를 지으며 이런 적은 처음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에 따르면 꿀벌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 꿀벌 사체도 없어 어디서,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확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꿀벌이 사라지면 벌통 내부에 있는 ‘소비’(벌집틀)도 사용할 수 없어 손해가 크다.

김씨는 “벌들이 사라지면서 소비에 있는 애벌레가 방치돼 그대로 썩어버린다”며 “소비 1장에 5500원 정도 하는데, 올해만 약 900여개를 버려야 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함평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도 이같은 이유로 양봉농가에서 소비를 태우다 번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대로 올해 농사를 포기할 수 없어 꿀벌을 새로 구매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부담이 상당하다.

꿀벌 1통(꿀벌 약 10만 마리)의 시세는 현재 40만원으로, 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2~3년 전 시세인 15만원보다 2배 이상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예전에는 2통 정도만 사면 만상벌(벌통에 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됐는데, 현재는 3.5통을 사야해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광주의 상황도 비슷하다.

광주 광산구 본량동에서 50여년째 벌 농사를 짓고 있는 양봉 농민이 벌들의 먹이가 그대로 남아 있는 빈 벌집틀을 들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 본량동에서 50여년째 벌 농사를 짓고 있는 정병호(79)씨는 꿀벌 110통 중 현재 20통만 남은 상황이다.

정씨는 “올해 채밀(꿀벌을 이용해 꿀을 따는 것)은 포기하고, 양성(꿀벌 늘리는 작업)만 하기로 결정했다”며 “없어진 꿀벌의 가치만 4000여만원, 올해 꿀벌 농사를 포기하면서 발생한 손실은 5000여만원이다”고 밝혔다.

꿀벌은 이처럼 사라지는데, 국내 날씨마저 변해 꿀벌 농사 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예전에는 남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면, 최근에는 기후가 변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꽃이 피고 진다”며 “전국을 이동하며 꿀을 따는 양봉업자들의 수입도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양봉협회는 지난달 정부세종청사에서 꿀벌 집단 폐사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양봉협회 관계자는 “다른 농사와 달리 양봉은 인간이 손을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닌만큼, 빚을 지고 농사를 시작했다가 빚을 떠앉고 양봉업계를 떠난 사람이 부지기수다”며 “양봉업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구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최근 2년간 약 20억 원을 투입해 꿀벌 질병 예방과 꿀벌 구입비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전남도도 올해 꿀벌 피해농가 경영 안정을 위해 꿀벌 구매비, 사료 구매비용 등 약 60억 원을 지원한다.

전남도 관계자는 “꿀벌이 사라지는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며 “현재 꿀벌 농가 피해에 대한 지원을 재해 발생 수준으로 늘려, 식량작물 생산 등 공익적 가치가 큰 꿀벌의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천홍희 기자 str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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