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람 아닌 것 - 이덕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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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곤고했던 농부의 몸에서 내린 밤 집 앞 텃논에 평생 새긴 별보다 많은 발자국이 한순간 환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 어둑해진 텃논의 유업을 밝히기 위해 날마다 맨발로 소를 몰고 나가 캄캄한 무논을 갈아엎는 심정으로 당신의 빛나는 발자국을 따라가겠습니다.”
이덕규 시인의 시집 ‘오직 사람 아닌 것’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지난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그는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밥그릇 경전’,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시인선 189번으로 발간된 이번 시집의 주인공은 ‘자연’이다. 자연의 이야기로 풀어낸 시는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이다. 누구나 태어난 장소임에도 그러나 멀리 떠나온 자연은 늘 본능의 회귀를 환기한다. 비록 사람이 떠난 빈집이어서 황량해보이지만 그곳은 자연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들이 왕성히 움직이는 배경이 되어 있다.
“맑은 정오, 항아리에 이슬 내린 물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눈이 휑한 짐승이 그 안에 비친 검은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다// 산 너머 사리 바다에서 물고기 우는 소리가 종일토록 넘어왔다// 먼길을 돌아 일 년 만에 지상에 내려온 누님 발등이 소복이 부어 있었다” (‘백중(百中)’중에서)
위 시는 백중을 모티브로 화자가 보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풍경으로부터 길어 올리는 정조는 쓸쓸함과 서글픔이다. 깊은 사유와 맑은 서정이 어우러진 작품은 오랜 여운을 준다. 아마도 시란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일지 모른다. <문학동네·1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이덕규 시인의 시집 ‘오직 사람 아닌 것’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지난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그는 현대시학작품상, 시작문학상,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밥그릇 경전’,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등을 펴냈다.
위 시는 백중을 모티브로 화자가 보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는 풍경으로부터 길어 올리는 정조는 쓸쓸함과 서글픔이다. 깊은 사유와 맑은 서정이 어우러진 작품은 오랜 여운을 준다. 아마도 시란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일지 모른다. <문학동네·1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