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대한민국 검찰과 조선의 사헌부
2023년 03월 02일(목) 00:30
조선의 최고기관은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극품(極品)이라고 불린 정1품이 세 명이나 포진한 의정부였다. 그러나 의정부 못지않은 권위가 있는 기관이 지금의 검찰격인 사헌부(司憲府)였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사헌부에 대해 “현행 정사에 대해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참람하고 거짓된 것을 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등의 임무는 지금 우리 국민들이 검찰에게 바라는 바와 비슷하다.

실제로 조선의 사헌부는 이런 일들을 수행했다. ‘연려실기술’ 중 ‘관직전고’(官職典故)는 사헌부 관원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사헌부 정6품 감찰(監察)에 대해 성현(成俔)은 ‘감찰청벽기’(監察廳壁記)에서 “(사헌부) 감찰이 왔다는 소리만 들려도 사람들이 다 몸을 움츠리고 무서워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사헌부 관원이 조정에 섰다고 모든 관료를 떨게 하는 권위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大司憲)은 종2품 차관급에 불과하지만 심지어 임금의 부당한 명령에도 맞서는 기개가 있었다.

사헌부는 내부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했다. ‘관직전고’는 “지평(持平:정5품)은 뜰에 내려가서 장령(掌令:정4품)을 맞았고, 장령은 집의(集義:종3품)를 또 그와 같이 맞았으며, 집의 이하는 모두 내려가서 대사헌을 맞는 것이 상례(常例)였다”고 전하고 있다. 위계질서는 엄격했지만 상관이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하면 바로 탄핵에 나섰다. 명종 16년(1561) 4월 사헌부는 “대사헌 송기수가 상소를 올릴 때 거론해야 할 장본인이 있는 줄 알면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파직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 송기수가 인순왕후 심씨의 외숙 이량(李樑)과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의 이름을 들어서 탄핵하지 않았으므로 파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고 권력 실세들의 눈치를 봤다고 대사헌의 파직을 요청한 것이다. 자신들의 수장을 탄핵할 정도이니 사헌부 관원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백관이 떠는 것은 당연했다.

사헌부의 권위는 극도의 도덕성에서 나왔다. 사헌부 관원들은 조정 회의 때 다른 부서의 관원들보다 먼저 들어갔다가 회의가 파하면 다른 관원들이 다 나간 후에 따로 나갔다. 같이 섞여서 들락거리는 과정에서 청탁이 있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헌부에 배속되면 수도승(修道僧)같은 생활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사헌부 감찰에 대해 “남루한 옷에 좋지 않은 말과 찢어진 안장, 짧은 사모에 해진 띠를 착용했다”면서 “비록 귀족이나 명사(名士)일지라도 사헌부의 이런 구규(舊規:관례)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 출신도 사헌부 관료가 되면 가난한 벼슬 생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이 있었다.

사헌부 출신이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것은 명예였다.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칼날이 무뎌지면 곧바로 선비들의 의론인 ‘사론’(士論)에 저촉되어 비루하게 여겼는데 이를 죽음보다 두렵게 여겼다. 사법기관의 진정한 권위는 권력의 눈치를 일체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인척이나 고위직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수사하고 자신도 엄격한 도덕성을 갖추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근래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다시 회자되는 것은 길게 보면 검찰이나 정권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학폭을 저지른 자식을 대신해 대법원까지 소송을 불사한 전직 검사나 50억 클럽의 전직 검사 등은 조선으로 치면 사론(士論)에서 비루하게 여기고 이미 폐기 처분을 당했을 인물들이다. 최소한의 도덕성도 갖추지 못한 전·현직 검사들에게 권력을 자꾸 쥐어 주면 국민들은 멀지 않아 그렇게 권력 운용을 하는 정권 자체를 비루하게 여기게 되어 있다. 벌써 조짐이 보인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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