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소머리곰탕의 속사정
2023년 02월 09일(목) 00:30
한국인이 당대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볶음과 구이다. 기름(식용유)과 고기의 대량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생긴 일이다. 옛 잔치상에나 오를 만한 음식이다. 오죽하면 가장 정성껏 모시는 음식인 제사에 구이와 지짐류가 빠지지 않겠는가. 소고기 산적을 올리는 제사가 많은데, 이는 과거엔 정성을 들이자면 으뜸에 속하는 공자 맹자를 기리는 제사상과 종묘 제사에나 오르기 좋은 음식이었다. 그만큼 귀하고 비쌌다.

서울 장안에 반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의 성균관 부근인 명륜동 일대다. 조선 당국은 오랜 기간 금우를 정책적으로 지지했다. 소는 곧 경운기이자 트랙터였으니 고기 먹자고 죽이는 걸 금했던 것이다. 그런 조정에서도 성균관의 제사에는 소고기를 쓸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반촌은 도살을 하는 마을을 뜻했다.

알다시피 고기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민족이라 난로회 같은 구이 유희가 더러는 법망(?)을 피해 가며 열렸다. 주로 소고기를 화로에 구우며 시를 읊고 술잔을 나누는 연회였다. 그러나 이는 제한된 양반이나 돈 많이 번 중인 계급, 관료의 사치였다. 이순신 장군의 음식상을 재현해 보면 거의 생선과 남새, 젓갈과 장의 밥상이었다.

앞에서 전 부치는 제사상의 유행은 이른바 식용유 도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으로부터 과잉 생산된 콩의 대량 수입은 식용유라는 이름으로 60년대부터 크게 보급되었다. 식용유가 없을 때는 요즘 흔한 부침과 전도 최소화되었다. 들기름, 땅콩기름 등 부침용 식용유가 상당히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명천에 기름을 적셔 두고 가마솥 뚜껑이나 번철에 아껴 가며 전을 부치는 게 고작이었다. 콩은 기름 짜고, 깻묵은 사료화되면서 축산도 커졌다. 고기가 싸게 공급될 수 있었다. 80년대 이후의 지배적인 고지방 고단백 식사는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앞서 반촌의 소고기 도축 이야기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테마가 바로 설렁탕과 장국밥의 유행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은 이 두 가지 음식의 배태지다. 반촌의 도살 마을은 품삯으로 소의 부산물을 얻었는데, 이것이 설렁탕이 되었다. 장국밥은 살코기 중심의 좀 더 고급한 외식이었고, 설렁탕이 더 많이 공급되는 메뉴였다. 그것은 소머리와 뼈 덕이다. 오래 고아 최대한 영양분을 추출한 설렁탕은 적은 재료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소머리는 엄청난 은혜였다. 구이를 할 만한 부위는 아니었지만 푹 고면 맛이 좋았다. 지금은 설렁탕과 소머리곰탕으로 분화되었지만 50, 60년 전에는 소머리가 설렁탕에 포함되는 게 보통이었다. 소머리는 든든한 뼈가 넉넉한 국물을 내 주었고 쫀득한 껍질, 고소한 볼살,여기에 우설이 더해져서 푸짐해졌다. 설렁탕에는 소 지라가 필수였고 소머리곰탕에는 우설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지라는 특유의 진한 맛 때문에 배척되고, 우설은 고급 구이용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별도로 빼서 팔리기도 한다.

설렁탕, 소머리곰탕도 시대의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소머리곰탕은 설렁탕에서 갈라져 나와 독자 노선(?)을 걷는데,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다. 무엇보다 진하고 묵직한 황소머리의 부재가 크다. 소가 역우로서 기능을 잃으면서 고기소로 사육된 이후 거세가 가해졌다. 사육 효율과 고기 맛이 좋아지고 무엇보다 부드러워져서 가치가 올랐다. 지금도 암소 고기를 최고로 치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거세가 없던 시대의 흔적이다. 암소가 황소와 달리 이취(노린내)가 없고 부드럽기 때문에 생겨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황소가 거의 사라진 당대에는 그 의미가 줄어들었다.

지금도 유서 깊은 소머리곰탕집 몇몇은 얼마 되지 않는 황소 머리를 구해 쓴다. 국물의 깊이, 고기의 양이 다른 까닭이다. 경기도 오산의 옛 장터에 가면 과거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했던 집이 있다. 아직도 그 며느리 되는 분이 옛 맛을 지키고 있는데 역시 황소 머리를 구해서 쓴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맛이란 없다. 소머리곰탕은 흥미롭게도 사육 기술의 발달로 옛날과는 조금 더 다른 음식이 됐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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