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2년 -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3년 02월 06일(월) 00:10
지난 1일은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발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다. 2020년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민족연맹 정당이 승리하자 군부는 이를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헌법은 비상사태를 최장 2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군부는 다시 6개월 연장을 결정했다.

미얀마의 근현대사는 쿠데타의 역사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요 순간마다 군부가 정치 전면에 나섰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당시 국가명 버마)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다. 1962년 야심가인 네윈 군사령관은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와 악화된 경제난을 내세워 쿠데타를 감행했다.

장기간 군사정권의 폭압에 신음하던 시민들은 1988년 3월 ‘양곤의 봄’과 ‘8888 민주항쟁’(88년 8월 8일)을 전개한다. 그 결과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한다. 그러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주화 열망을 짓밟고 만다.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민주화 시위를 전개했고, 그 결과 2015년 아웅산 수치의 NLD는 총선에서 승리를 쟁취한다.

하지만 군부는 민간에 정권을 이양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민간의 압도적인 승리를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정권 찬탈의 기회로 악용한다. 이들 군부의 행태는 세계의 독재자들이 자행해왔던 행태와 궤를 같이하는데, 자국민 학살과 무력 통치 강화가 그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에 살해된 시민이 3000여 명,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이 120만 명에 이른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우간다의 도살자 이디 아민, 이라크의 철권 통치자 사담 후세인, 세계대전의 전범 히틀러 등의 사례는 명징한 증거다. 지난해 사망한 전두환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고 5·18 당시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미얀마 쿠데타 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의 운명 또한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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