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시를 원한다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할 도시…철저한 검토·구체적 실천 필요
다양성 전제돼야 아름다운 도시
보행·스마트·안전한 도시 등
도시 가치 보존·유지 공간 조성
무분별한 고층 아파트 개발
공원·녹지 등 공공공간 조성 안돼
‘경제성’·‘효율’·‘외지인 중시’
다양성 전제돼야 아름다운 도시
보행·스마트·안전한 도시 등
도시 가치 보존·유지 공간 조성
무분별한 고층 아파트 개발
공원·녹지 등 공공공간 조성 안돼
‘경제성’·‘효율’·‘외지인 중시’
![]()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인근 공원. 다양한 조형물, 녹지, 사람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
광주일보는 지난 1년간 연중 시리즈 ‘행복해지려면 건축과 도시를 바꿔라’를 통해 40여 명의 국내외 저명한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시 공간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폈다. 사실 멋진 건축물과 아름다운 도시 공간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며,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 역시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고 스스로에게 행복감을 주며, 외지인에게는 부러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우선 멋진 건축물은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강조했듯 기능, 구조, 미를 만족시켜야 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상징성·독창성까지 갖춘다면 시민들은 그 건축물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된다. 여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를 갖고, 자연 요소, 에너지 절감 시스템 등 첨단 기능까지 더해진다면 그 자체로 도시의 자원이 된다.
#도시공간, 역사와 정체성 담아야
아름다운 도시는 다양성이 그 전제다. 하나의 종류로 공간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거나 이색적인 요소들이 한데 섞여 어울림으로써 눈을 뗄 수 없는 경관을 만들어낸다. 고대, 중세, 근대의 자원들을 간직하고 있는 유럽의 도시들에서 우리가 내뱉는 그 감탄사는 역사와 정체성을 중시한 도시 공간의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가지 내에서 승용차의 운행·주차를 최대한 규제하면서 지하철·전철(트램)·버스·자전거·도보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다시 짜야 한다. 좁지만 옛 정취가 묻어있는 골목길, 작은 공원, 광장, 하천 등이 곳곳에 자리해 시민들이 여유를 갖고 걸으며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고유한 전통·역사를 간직한 구도심과 찍어낸 듯 비슷하게 조성된 신도심은 각기 다른 기준으로 관리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시리즈에서 수차례 언급되고 있는 주제어들이 왜 광주·전남의 도시 공간에서는 실현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실마리는 일제강점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와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은 식민지 조선을 대륙 침략과 강제 수탈, 단기간 높은 수익 창출과 특혜를 위해 국토·도시 공간을 왜곡시켰다. 국토는 ‘효율 우선’ 속에 불균형 발전이 고착되고, 도시는 ‘특혜 개발’ 속에 외지인이었던 재조선 일본인과 부역자들에게 큰 수익을 남겨줬다.
해방 이후 미군정, 6·25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에 도시 인구는 폭증했다. 농수축산업, 1차 산업의 근거지인 농어촌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일자리를 찾아 산업도시, 지역중심도시, 서울과 수도권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하에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일제가 남겨놓은 철도,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을 고도화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시설을 배치했다. 일제강점기 시작된 지역 간, 도시 간 불균형은 더 심각해졌다.
일단 도시 공간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을 공급하는데 치중했다. 급증하고 있는 인구를 수용하기에 모든 것이 미흡했던 도시 공간에 주택을 시작으로 도로, 상하수도 등 우선 기본적인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공공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택 공급은 민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기반시설은 ‘계획적’이지 못했고, ‘주먹구구식’으로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그 당시의 최소 수요를 충당하는 수준으로 설치됐다.
1990년대 들어서 ‘압축 성장’의 성과가 나타나며 개인 소득이 상승하고, 정부 및 도시 지자체가 어느 정도 도시 공간에 대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유럽, 미국, 일본 등과 같이 도시를 계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식도 강해졌다. 그러나 난개발 대상이 됐던 기존 시가지는 부실한 노후 단독주택 및 점포, 하수구를 복개한 좁은 골목길, 미흡한 편의시설 등 과거 그대로 방치됐다.
공공·민간은 토지 가격이 비싼 기존 시가지를 외면하고, 값싼 외곽 토지에 택지지구, 신도시 개발에 나섰다. 정부·지자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공기업들은 대규모 택지를 조성해 수익을 챙기고, 건설업체들은 여기에 아파트를 지어 높은 분양가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도시 구역이 넓어지고, 인구는 외곽으로 이동했으며, 시가지의 구심력은 상실되고 있었다.
#무용지물 계획, 무분별한 개발 더는 안돼
2010년대 접어들면서 아파트는 ‘상품’으로 거래되고, 도시는 거대한 ‘부동산 시장’이 됐다.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핑계로 시가지·외곽 곳곳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지자체는 인·허가를 남발하고, 그로 인해 수시로 변경되는 도시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아파트 공급은 늘었음에도 가격은 크게 올라 건설업체들은 또 수익을 얻고, 아파트를 되팔아 ‘프리미엄’을 챙기는 투기꾼들까지 설치면서 도시 공간은 엉망진창이 돼 가고 있다. 개발이 쉼없이 계속되지만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원, 녹지 등 공공공간은 사라지거나 새롭게 조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절된 채 아파트 시멘트 벽이 길게 늘어선 경관이 어느덧 광주를 대표하고 있다.
아파트는 죄가 없다. 좁은 면적에 다수의 사람이 주거에 필요한 시설을 공유하면서 누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짓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아파트 개발은 새로운 도시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발 이익의 환수 방안, 실수요자가 아파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방안, 주변 경관과의 조화 및 기존 주민들의 재거주 증진 방안, 개발에 따른 지역 공동체 및 도시에의 기여 방안 등이 우선 검토돼야 할 것이다. 개발은 외지인이 아니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삶의 질 향상에 보탬이 돼야 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아름다운 도시와 멋진 건축물은 수백년 이상 이어진 장기간의 공공 투자, 공공의 적절한 규제 및 인센티브를 수용한 민간의 투자가 어울려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에 대한 공공 투자는 매우 미흡하다. 공유지는 적고, 지역 주민이나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공간도 극히 제한적이다. 하천·저수지에서는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공원은 산책하거나 소풍 가기에 부적절하며, 도로에서는 자동차나 적치물을 피해 제대로 걷기 어렵다. 인구와 자본이 집적돼 있어 공공 재정이 넘치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와의 격차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수도권 인구 과밀, 지방 인구 소멸은 공정하지 못한 공공 투자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시 공간이 누군가에게 과도한 부를 안기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경제성’과 ‘효율’만을 우선해 공간 내에 내재돼 있는 가치, 자원, 정체성 등을 내팽개치는 일제강점기 개발의 유산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시민 삶의 질 향상, 지역 성장 및 미래 지속가능성 증진, 후대에까지 전해 줘야 할 도시 가치 보존 및 유지 등이 공간 조성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할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뤘던 보행도시, 스마트 도시, 압축도시, 안전도시, 재밌는 도시, 베리어 프리(무장애) 도시, 더불어 사는 도시, 공공 건축, 광장·공원·하천 등 녹색 인프라 등은 이 원칙을 수행하는 방법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건축과 도시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재의 도시 공간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새로 조성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줘야 할 것인지 보다 철저한 검토와 구체적인 실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끝>
윤현석
광주일보 정치부 부국장
전남대 도시 및 지역개발학 박사
전남대 지역개발연구소 위촉연구원
도시사학회·한국지역개발학회 정회원
![]() 손넨쉬프(태양으로 가는 배)라는 주차장으로, 건물 내에 마트와 주차장, 옥상에 태양열주택이 있다. 유럽의 생태수도 독일 프라이부르크를 상징하는 건물로 유명하다. |
기본적으로 시가지 내에서 승용차의 운행·주차를 최대한 규제하면서 지하철·전철(트램)·버스·자전거·도보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다시 짜야 한다. 좁지만 옛 정취가 묻어있는 골목길, 작은 공원, 광장, 하천 등이 곳곳에 자리해 시민들이 여유를 갖고 걸으며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고유한 전통·역사를 간직한 구도심과 찍어낸 듯 비슷하게 조성된 신도심은 각기 다른 기준으로 관리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 시리즈에서 수차례 언급되고 있는 주제어들이 왜 광주·전남의 도시 공간에서는 실현되지 못하는 것인가. 그 실마리는 일제강점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와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은 식민지 조선을 대륙 침략과 강제 수탈, 단기간 높은 수익 창출과 특혜를 위해 국토·도시 공간을 왜곡시켰다. 국토는 ‘효율 우선’ 속에 불균형 발전이 고착되고, 도시는 ‘특혜 개발’ 속에 외지인이었던 재조선 일본인과 부역자들에게 큰 수익을 남겨줬다.
해방 이후 미군정, 6·25 한국전쟁 등의 혼란기에 도시 인구는 폭증했다. 농수축산업, 1차 산업의 근거지인 농어촌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일자리를 찾아 산업도시, 지역중심도시, 서울과 수도권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하에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일제가 남겨놓은 철도,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을 고도화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시설을 배치했다. 일제강점기 시작된 지역 간, 도시 간 불균형은 더 심각해졌다.
일단 도시 공간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을 공급하는데 치중했다. 급증하고 있는 인구를 수용하기에 모든 것이 미흡했던 도시 공간에 주택을 시작으로 도로, 상하수도 등 우선 기본적인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공공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택 공급은 민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기반시설은 ‘계획적’이지 못했고, ‘주먹구구식’으로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그 당시의 최소 수요를 충당하는 수준으로 설치됐다.
1990년대 들어서 ‘압축 성장’의 성과가 나타나며 개인 소득이 상승하고, 정부 및 도시 지자체가 어느 정도 도시 공간에 대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유럽, 미국, 일본 등과 같이 도시를 계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식도 강해졌다. 그러나 난개발 대상이 됐던 기존 시가지는 부실한 노후 단독주택 및 점포, 하수구를 복개한 좁은 골목길, 미흡한 편의시설 등 과거 그대로 방치됐다.
공공·민간은 토지 가격이 비싼 기존 시가지를 외면하고, 값싼 외곽 토지에 택지지구, 신도시 개발에 나섰다. 정부·지자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공기업들은 대규모 택지를 조성해 수익을 챙기고, 건설업체들은 여기에 아파트를 지어 높은 분양가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도시 구역이 넓어지고, 인구는 외곽으로 이동했으며, 시가지의 구심력은 상실되고 있었다.
![]() 무등산 서석대에서 바라본 광주 전경. 시가지, 외곽 등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미래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광주의 가치, 자원, 정체성을 감안한 도시 공간 구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2010년대 접어들면서 아파트는 ‘상품’으로 거래되고, 도시는 거대한 ‘부동산 시장’이 됐다.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핑계로 시가지·외곽 곳곳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지자체는 인·허가를 남발하고, 그로 인해 수시로 변경되는 도시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아파트 공급은 늘었음에도 가격은 크게 올라 건설업체들은 또 수익을 얻고, 아파트를 되팔아 ‘프리미엄’을 챙기는 투기꾼들까지 설치면서 도시 공간은 엉망진창이 돼 가고 있다. 개발이 쉼없이 계속되지만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원, 녹지 등 공공공간은 사라지거나 새롭게 조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절된 채 아파트 시멘트 벽이 길게 늘어선 경관이 어느덧 광주를 대표하고 있다.
아파트는 죄가 없다. 좁은 면적에 다수의 사람이 주거에 필요한 시설을 공유하면서 누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짓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아파트 개발은 새로운 도시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발 이익의 환수 방안, 실수요자가 아파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방안, 주변 경관과의 조화 및 기존 주민들의 재거주 증진 방안, 개발에 따른 지역 공동체 및 도시에의 기여 방안 등이 우선 검토돼야 할 것이다. 개발은 외지인이 아니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삶의 질 향상에 보탬이 돼야 그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아름다운 도시와 멋진 건축물은 수백년 이상 이어진 장기간의 공공 투자, 공공의 적절한 규제 및 인센티브를 수용한 민간의 투자가 어울려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 도시에 대한 공공 투자는 매우 미흡하다. 공유지는 적고, 지역 주민이나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공간도 극히 제한적이다. 하천·저수지에서는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공원은 산책하거나 소풍 가기에 부적절하며, 도로에서는 자동차나 적치물을 피해 제대로 걷기 어렵다. 인구와 자본이 집적돼 있어 공공 재정이 넘치는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와의 격차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수도권 인구 과밀, 지방 인구 소멸은 공정하지 못한 공공 투자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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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건축과 도시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재의 도시 공간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새로 조성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줘야 할 것인지 보다 철저한 검토와 구체적인 실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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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정치부 부국장
전남대 도시 및 지역개발학 박사
전남대 지역개발연구소 위촉연구원
도시사학회·한국지역개발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