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아주 특별한 그림들의 여행 - 김소연 지음
성스러운 불교 회화의 특별한 여행
2022년 12월 22일(목) 18:35
‘부석사 괘불’은 두 점이 있는데 1745년 작품은 1684년 작품을 중수한 것이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684년 작.
괘불은 사찰 마당에서 진행되는 야외 불교 의식 때 걸어두는 그림을 말한다. 이 불화는 대략 높이가 8~14미터에 이른다. 이전 시기, 다시 말해 고려와 조선전기에는 실내에 안치됐지만 임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불교 미술로 달라졌다. 전란 기간 의승군의 활약 등과 맞물리면서 블교는 민간에게도 친숙한 종교로 다가왔다.

무게와 크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괘불을 상시로 야외에 펼쳐둘 수 없었다. 사찰에서는 의식을 치를 때만 실외에 펼쳤다. 현재 남아 있는 괘불은 120여 점이며 대다수는 17세기에 제작됐다.

‘많은 사람이 모여 떠들썩하고 부산스러운 풍경’을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 야단법석(野壇法蓆)은 야외에서 제단을 차리고 법회를 여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 야단법석(惹端法席)은 법문을 듣는 자리에서 묻고 답하는 것을 이른다.

근대 박물관이 건립되기 전에는 괘불을 일반인들은 괘불을 볼 기회가 없었다. 단순한 감상품이 아닌 범패를 비롯한 승무 등과 결합한 의례였다.

그러나 괘불도 일주문을 넘어 외부로 이동한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부석사 괘불’이다. 부석사 괘불은 두 점이 있다. 1684년 작품은 부석사가 이 그림을 ‘건륭 10년 을축년(1745) 4월에 중수하여 충청도 청풍 월악산의 신륵사에 옮겨 안치했다’고 돼 있다.

당초 있던 부석사의 1684년 작 괘불이 낡은 관계로 그림을 하나 더 제작해 봉안했다는 것이다. 신륵사는 청풍에 있었는데 충북 제천의 옛지명이다.

김소연 국민대 교양대학 조교수의 ‘아주 특별한 그림들의 여행’이라는 책에는 성스러운 그림들의 특별한 여행을 담고 있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 문화권 주류를 이루었던 블교 회화 대상으로 한다.

저자는 불교 회화가 어떤 이유로 여행을 떠났고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이는 누구이며 불교 회화의 미학은 무엇인지를 다면적으로 조명한다. 학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고려 ‘치성광여래도’와 성수 신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아시아 해상 신앙과 시각물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수많은 불교 회화가 일본으로 흘러갔다. 10~14세기 말에 이르는 동아시아 바다는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송과 고려, 일본 사이의 주요 무역 항로였던 동중국해는 상선들로 붐볐다.

조선에서 그려진 ‘석가탄생도’는 훗날 석가모니 부처가 되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 왕실에서 15~16세기쯤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 그림은 일본 후쿠오카의 사원인 혼가쿠지에 있다. 조선 왕실에서 제작된 이 그림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가게 됐을까.

일본은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여러 정치 세력이 대립과 전쟁을 반복했다. 히데요시는 1587년 후쿠오카의 국제교역항 하카타를 공략해 수중에 넣었다. 히데요시는 도시 계획일환으로 관개시설과 도로를 정비했으며 하카타 상인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당시 다카도 도진이라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지역의 리더로 도시 정비 사업에 적극 동참했다.

‘석가탄생도’가 도진의 손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 경위가 알려진 바는 없다. “세로로 접힌 흔적이 있는 등 훼손된 상태여서 상업적 거래나 선물이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일본에 건너갔으리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또한 임진왜란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항구 지역 상인이라는 점에서 군함을 타고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책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 송·원대의 영파 불화와 조선 불화, 에도 시대의 떠돌이 이야기꾼의 불화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종교화는 비종교화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이동했다고 본다.

저자는 “그림들의 특별한 여행기를 따라나서는 것은 성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속의 세계에 발을 들인 동아시아 종교 회화의 새로운 미학과 그 역동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해문집·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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