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을 짓는 한국 민예품을 만나다- 이영화 비움박물관 관장
2022년 11월 29일(화) 00:30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했던가. 한국의 새마을운동(1970년대)이 일어나기 전 농경시대 민속품들을 지난 반백 년 동안 우연히 모아서 비움박물관을 세우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혼자 눈물 짓고 애태우다가 이 글을 쓴다.

그간 갑자기 불어난 문명의 물살에 떠내려 오느라 놓고 온 것들. 부자가 되겠다는 성급함 때문에 전통문화를 시대에 맞게 갈무리하지 못하고 서양문화에 취해 서양 사람을 따라가느라 잠시 올바른 판단과 가치관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현대인들과 함께 박물관 할머니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해서다.

우선 전통문화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그 나라만의 독특한 의식주, 언어, 풍습, 예술, 제도 등으로, 그 나라가 보존하고 이어나가면서 발전시켜 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 했다. 지구상의 근원적 가치가 생명 가치, 사회 가치, 경제 가치, 문화 가치라 여기고 한국 전통문화 중에서 언어와 풍습에 대한 예를 들까 한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빈 들판에 까치밥을 남겨두고 울안에 노적봉처럼 인심을 쌓아올리며 겨우살이를 준비했다. 그런 치성으로 조상을 섬기고 정성으로 자식을 키우며 부모 자식 간 도리를 자연의 질서로 일깨웠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눔의 정신을 삶의 으뜸으로 삼았던 전통문화의 정신 줄이 오늘의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 줄로 이어졌으면 좋을 것 같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며 특별히 말조심하라 이르고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며 말의 소중함을 말로써 가르치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며 인과응보 정신까지도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했던 게 우리의 민족의 역사다.

근세기에 강대국의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가 돼 나라들이 자기 나라 말과 글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목숨을 걸고 우리 말씨와 모국어를 지켰다. 비록 굶주릴지언정 뒤웅박 속에 담아둔 씨앗을 소중히 생각했던 만큼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그것은 돈이나 이름, 연대, 세평 등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생명의 소중함과 씨앗의 생명력만을 간직하고 잇고자 했던 정신에서 연유한다. 박물관에는 그런 전통의 정신이 깃든, 우리 조상들이 손수 만들어낸 민속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부정적인 폐해도 급증했다. ‘가난하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불과 반세기 만에 선진국이 되고 부자 나라로 도약했다. 기계문명의 편리함과 여유를 누리는 사이 한국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말았다.

예컨대 한국인 의식주에 깃든 모든 것, 도시 건물과 간판, 하다 못해 시골 마을 이름까지 서양말로 바꿔치기 하는 현실 이다. 왁자지껄한 대형 축제 마당도 서양풍 일색이어서 어느 때는 우리가 서양문화 식민지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했던가. 이미 세계의 지성들이 갈채를 보내고 있는 한류 문화는 한국인만의 유일한 독창성과 창의성, 익살과 해학, 한없이 따스하고 겸손한 한국 전통문화의 선한 영향력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전통문화 속의 언어와 풍습을 미래 세대에게 잇게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애국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서 오는 12월 18일까지 비움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 꾸려지는 전시회 ‘복을 짓다’전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옷 짓고, 밥 짓고, 집 짓고, 농사짓듯이 평생을 두 손 모아 복을 짓던 한국 전통 민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출산 문화에서 장례 문화까지 옛 한국인들의 치성과 정성의 마음을 모았다.

이번 전시가 현대인들의 가물어진 마음의 샘물이 되고 허물어진 정신의 고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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