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 장고분-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광주 도심 한복판에는 눈길 끄는 고분이 있다. 광산구 월계동 장고분이다. 임영진 전남대 교수는 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 개발이 한창이던 1992년 12월에 이 고분과 인연을 맺었다. 네 기로 알려져 있던 고분의 발굴을 맡았는데 한눈에 장고분임을 알아보고 보존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실은 네 기가 아니라 고분 두개가 잇닿아 전통악기인 장고를 닮은 두 기였는데 일본에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 불리는 고분과 같았다. 우리 학계에서는 일본과 구분하기 위해 장고분, 전방후원형 고분 등으로 명명한 연구자가 많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월계동 장고분은 두 기가 모여 있어 특이했고 학술적 가치도 높았다. 당시까지 발견된 장고분은 극소수였고 대부분 단독분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월계동 장고분은 도굴 피해를 입었고 절반 가량 파괴된 상태였다. 공사 시행자인 한국토지공사는 1993년 9월 1차 조사가 끝나자 이전 복원을 강행하려 했다. 고분이 도시계획상 도로 부지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역사적 가치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그 장소에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계획된 도로의 선형이 변경돼 4300평이 유적 공원으로 보존됐고, 1994년 2월 광주시 기념물(제20호)로 지정됐다.
월계동 1·2호분에서는 분주토기·목기(무덤 주위에 세워놓은 의례용 토기와 목기) 등이 260여 점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점기 나주 신촌리 고분에서 유사한 토기가 발굴됐지만 월계동 장고분을 통해 비로소 그 쓰임새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현재까지도 장고분 피장자와 조성 주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일 교류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심심찮게 일본인 연구자나 관광객이 월계동 장고분을 찾는 이유다.
월계동 장고분은 역사적 가치는 물론 문화유산 보존의 전범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대 문화 콘텐츠가 빈약한 광주에는 소중한 자산이다. 내년이면 월계동 장고분이 발굴된 지 햇수로 30년 된다. 학술대회나 발굴 유물 전시, 문화 행사 등이 열린다면 더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월계동 장고분은 역사적 가치는 물론 문화유산 보존의 전범을 보여 주는 유적으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대 문화 콘텐츠가 빈약한 광주에는 소중한 자산이다. 내년이면 월계동 장고분이 발굴된 지 햇수로 30년 된다. 학술대회나 발굴 유물 전시, 문화 행사 등이 열린다면 더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