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집 기피-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2년 10월 28일(금) 00:15
고대로부터 모든 나라는 국가 방위를 위한 군대를 조직했으며, 이를 위해 나름의 징병 제도를 운영했다. 국가별·시대별 차이는 있지만 징병의 방법은 대가를 지불하고 군사로 고용하거나 의무 복무를 강제하는 등 크게 두가지였다. 대표적으로 고대 중국은 백성들에게 경작할 토지를 주고 군사로 고용했으며, 제정 러시아는 농노에게 20년이나 25년간 의무 복무케 했다.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남성이라면 누구나 병역 의무를 진 현대 징병 제도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기인한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후 봉건제가 무너진 프랑스는 왕정 체제로 돌아가려는 주변국들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새롭게 건립된 프랑스 공화국은 18~25세 미혼 남성은 누구나 군대를 가는 국민개병제를 최초로 실시했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북군에서 먼저 의무 징병제를 실시, 20~45세 남성을 징집했다. 미국은 1·2차 세계대전 동안 징집을 통해 최고 수준의 병력을 보유했다. 이후 미국이 대규모 징병을 실시한 시기는 베트남 전쟁 때다. 미국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징병을 통해 185만 명까지 병력을 확장한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1만 5000여 명이 전사하는 등 사실상 패전하고 만다. 당시 미국은 매월 4만 명씩 징병을 한 탓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전 분위기가 확산됐다. 수많은 청년들이 캐나다나 영국으로 도피하는 등 병역을 기피했다. 이같이 베트남 전쟁 기간 징병을 회피해 기소된 사람만 21만 명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 사회는 모병제로 전환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에 필요한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러시아가 징집 명령을 내렸지만 모집이 용이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자국을 이탈하는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카자흐스탄에만 20만 명에 가까운 러시아인이 몰려들었고, EU로 넘어간 숫자도 6만 명이 넘는 등 최소 30만 명의 러시아 남성들이 징집을 피해 주변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침략에 대한 역사적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국민들이 반대하고 청년들까지 징집을 피해 나라를 떠나는 상황에서 치르는 전쟁은 일찍이 베트남전의 미국 경우에서 보듯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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