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풍경] 광주공항, 어린왕자의 야간비행과 푸른 창공의 도시
무안공항과 하나될 준비하는
작고 아담한 ‘광주공항’
너른 광야의 활주로에
대형 공원·식물원 들어서
도시 광주 허파 될수 있을까
하늘 나는 우주선·로봇 조종사
2022년 10월 14일(금) 14:00
실루엣처럼 보이는 광주공항 모습.
공항의 풍경이라 하면 잊을 수 없는 게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두 손을 맞잡은 장면. ‘6.15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인 그 만남의 결실이었지. 공항에서 화동들이 건네는 꽃다발은 우리 겨레의 하나됨을 북돋고 축복하는 선물 같았다. 평양의 순안공항처럼 작고 아담한 공항이 바로 우리 광주공항이다.

군용기 비상착륙지 말고 어엿한 공항이 시작된 해는 1948년. 동구 학동에 군용 훈련기지 비행장이 세워지면서다. 이듬해 ‘대한국민 항공사 KNA’ 민항기가 오가다가 1964년이 되어 광산구 지금 장소로 공항을 옮기고 여객청사도 생겨났다.

나주 다시면에서 태어난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은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1살에 서당을 들어갔는데 영특한 신동. 이십대엔 일본 유학을 떠났다. 장사수완에 천부적 재질을 가진 그는 해방 후 택시 두 대를 가지고 운수업을 시작, 뒤이어 광주여객 버스 사업도 손을 댔다. 장성과 담양을 오간 목탄차는 부품을 구해설랑 얼기설기 만든, 마치 멜 깁슨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올법한 그런 버스였다. 훗날 항공업에도 꿈을 품게 된다. 그 꿈은 마침내 ‘아시아나항공’의 탄생에 이르게 되었다. 시방은 경영 악화로 타 항공사에 인수 합병중인 상황이나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준 때가 있었다.

광주공항은 1995년 태국, 일본을 취항하는 국제선이 생기고, 2001년엔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 10개 노선이 활발하게 운항 되었는데, 2007년 무안국제공항이 생겨나면서 아성은 무너지게 되었다. 2008년 광주-무안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며 국제선 기능은 무안국제공항으로 모두 이사를 갔다. 물론 광주와 서울, 강원도와 제주 정도를 오가는 국내선 항공편으로도 여행자들은 가슴이 와륵 뛴다. 이곳에서 출발해 멀리 유럽이나 미주,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거나 회사일로 출장 가는 이들에겐 국내선 공항도 국제선의 첫 단추나 마찬가지. 광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박차고 오르면 무등산과 영산강이 그득하게 보이고, 멀리 지리산과 남해바다까지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안타까운 것은 광주 시내가 온통 아파트 단지로 요쪽 말로 ‘모냥(모양)’이 없다는 점.

아이들은 비행기를 보고 조종사가 되고 싶어한다. 또는 하늘을 나는 로봇을 조종하는 장난감이나 만화를 보고 자란다. 197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황금박쥐, 아톰, 철인 28호, 마징가 Z, 마징가의 속편인 그레이트 마징가와 UFO 로보트 그랜다이저 등 거대한 로봇에 대한 만화가 일본에서부터 한국까지를 휩쓸었다. 우리나라는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가 창조되기에 이르렀지. 오늘도 누군가 조종사가 되는 꿈을 꾸고, 누구는 여행자가 되어 하늘을 날아 멀리 타국을 헤매는 꿈을 꾸리라. 어디선가 아이들은 우주선과 로봇을 조종하는 꿈을 기르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 ‘로보트 태권V’를 보며 두 팔을 뻗었던 기운을 이어나가길….

하늘의 주인공은 역시 새다. 그 중에 북극에 사는 제비갈매기는 북극 하고도 가장 북쪽에 둥지를 틀고 사는데, 왜인지 까닭은 모르겠지만 대서양과 유럽 하늘을 날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허들 삼아 넘고, 아르헨티나 끄트머리 파타고니아에 이르러 숨을 고르다가, 남극땅에 도착해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려 1만8000킬로미터를 날아 여행하는 북극제비 갈매기. 마치 영원히 사라진
장미꽃과 어린왕자. /임의진
비행조종사이자 어린왕자의 소설가 생텍쥐페리처럼 영원히 하늘을 나는 운명을 가진 존재들 같아. 소설가는 단편 ‘남방 우편기’에서 제 운명을 예감하고 이렇게 적었다. “비행사 사망, 기체는 손상 없음.”

1931년 봄날 소설가는 젊은 과부 콘수엘로를 만나 사랑하고 청혼한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청혼하는 거예요. 당신 손이 참 좋아요. 이 손을 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어요.”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피로연 메뉴 페이퍼에 소설가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소설가는 이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야간 조종사 일을 했다. 카사블랑카와 포르에티엔 구간을 오가면서 사하라 사막을 바라보곤 했다.

“내 사랑, 당신은 벌써 하늘 위에 있지만 나는 당신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밤이 되었고, 당신은 여전히 멀리 있어요. 낮을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우리 집으로 다가오는 동안 잠을 잘 거예요. 당신을 기다리러 뜰로 나갈 거예요. 사랑하는 당신, 벌써부터 당신의 엔진이 내 심장 속에서 부르릉 거리네요. 내일이면 늘 앉는 이 탁자에 당신이 내 눈의 포로가 되어 앉아 있능 거란 걸 알아요. 당신을 보고 만질수 있겠지요... 카사블랑카에서 사는 건 내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거예요. 내가 살림에 서툰 게 고생스럽긴 하겠지만요. 재주 많은 내 새는 정말, 정말 예쁠 거예요. 당신이 내게 노래를 불러 줄 테니까요. 주님이 당신을 지켜주시길” (황금 펜촉)

소설가 생텍쥐페리
소설가는 한때 에어프랑스의 기장으로 취직하기도 했다. 생텍쥐페리를 사랑하는 나도 그래서 에어프랑스를 일부러 타보기도 하고 그랬었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사는 암스테르담의 KLM으로 1919년에 설립. 세상에서 가장 큰 비행기는 747. 세상에서 가장 긴 논스톱 비행노선은 싱가포르항공의 로스앤젤레스와 싱가포르 노선으로 예정 비행시간이 18시간 40분. 이집트 에어의 꼬리에는 ‘태양의 신 호루스’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비행기에 대해 알고, 비행기 조종사에 대해 알아가는 일도 재미있는 여행이 되곤 하지. 예전에는 비행기에서 담배를 태웠고, 승무원의 코스 요리 대접을 받기도 했다. 지금의 비행기는 예전 그 시절보다 무려 4배나 빠르다고 해.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 이유는? 떨어질 시간이 없기 때문에 떠 있는다는 게 정답.

생텍쥐페리가 쓰고 그린 ‘어린왕자’의 전라북도판 ‘에린왕자’ 번역본을 가끔 읽곤 해. 광주공항에서 이 책을 읽으며 다음 비행편을 기다린다면 즐거울 거 같아. “자네가 낭중에 아프리카 사막으로다가 질을 떠날 적에 여글 지대로 알아볼라믄 이 풍경을 꼽꼽허게 살피봐야 되아. 그려서 여그로 지나가게 되믄 말이여, 자네헌티 부탁 좀 허게잉. 너무 빨리 갈라고 그러덜 말고, 저 벨 밑으서 쫌만 지달려 줌 쓰겄네! 그려서 애린 애 하나가 자네헌티 와 갖고 웃어 쌓는디 머리크락이 금빛깔인디다 뭘 물어봐다 대답도 안 허믄 말이여, 갸가 누군가 자네는 알거여잉. 그러믄 부탁 좀 헙시다. 나 혼차 맴 시리게 놔두덜 말고잉. 갸가 다시 왔다고 나헌티 얼릉 펜지 한 통만 좀 써 주게잉…”

마티스 작 ‘공중곡예사’ (1952)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센타에 가면 ‘공중곡예사’ 그림이 있다. 마티스의 그림은 마치 다시 살아온 어린왕자의 공중곡예 놀이처럼 몸을 한껏 뒤로 꺾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돈 내고 배우는 요가 자세를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하늘로 박차오르기 전에 윗몸을 아래로 당기는 슈퍼맨도 그렇고, 비행기도 잔뜩 뒤로 물렀다가 달릴 준비를 마치면 그제야 힘차게 출발. 화가 마티스도 어린왕자의 소설가처럼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추상적으로 그림이 크게 바뀐다. 그는 말하기를 “내 그림이 피곤한 직장인을 위한 편안한 안락의자 정도 되었으면 좋겠네”라고 했단다. 누군 그의 그림이 인류가 동굴에 살던 때로 데려간다고도 말하더라. 비행기가 날고, 최첨단의 세상을 살고 있지만, 예술은 우리를 이 지상으로 끌어내려 오늘을 두런두런 살게 만든다. 예술은 초월의 목적조차도 오늘에 대한 기록과 감응에 기반한다. 마치 비행기가 결국은 공항을 찾아 착륙하듯이 말이다.

광주는 그 자신을 닮은 조그만 공항을 가졌다. 그런데 이제 무안공항과 하나될 차비를 하고 이사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공항을 ‘가졌다’를 ‘가졌었다’라고 쓰게 된다면 매우 섭섭하고 아쉬울 것도 같아. 함께 부지를 사용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군속과 전투비행단의 전투기로 굉음은 심장까지 벌렁거리게 만든다. 민간 비행기만 그 활주로를 사용하는 게 아니었고, 전투부대의 훈련은 주민들의 일상 삶을 흐트러트리기도 했겠다. 인간 삶의 근처에 전쟁과 무기와 제국의 주둔군이 있다는 건 든든한 게 아니라 안타깝고 서글픈 노릇이다.

이 너른 광야의 활주로가 대형 공원, 대형 식물원으로 과연 탈바꿈 할 수 있을까. 도시 광주의 허파가 되고, 맑은 핏물이 도는 심장이 될 수 있을까. 활주로를 걷어내면 항공유 기름으로 오염된 것은 설마 아닐까. 이런 저런 염려가 든다만, 달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주인들이 볼 때 지구는 여전히 푸른 별이겠지. 멀리서 볼 때만 우리는 위안을 얻게 된다. 사람도 가까이 보는 것보다 헤어져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이치렷다. 고향이나 살림집도 멀리 떠나면 배나 그립지. 광주공항은 떠나는 이들에게 돌아올 곳을 지정하고, 그리워하게 만드는 마법을 건다. 그 마법에 나와 당신도 그간 취해 살아왔던 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의진



시인. 화가. 사진도 찍는다. ‘참꽃 피는 마을’,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여행자의 노래 1-10’, ‘심야버스’ 등의 수필집, 시집, 음반 등을 펴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에 종종 출연했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65723600744431336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10일 00:5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