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 부대-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2년 10월 05일(수) 01:00
1988년 3월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102보충대로 입소할 때 이미 군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102보충대 인력은 모두 강원도 부대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2박 3일만에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27사단 신병 교육대로 배치받았을 때도 악몽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4월에 눈이 내리고 혹독한 훈련을 마치니 손이 부르텄다. 주특기 106을 받고 중화기 중대에 배치됐다.

일명 이기자 부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충성’ ‘단결’로만 알았던 거수경례 구호가 이곳에선 ‘이기자’였다. 부대명의 유래에 대해서도 설왕설래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군기를 빼앗겨서’라거나 ‘초대 사단장 부인 이름이 이기자였다’는 설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돌았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빚어진 오해였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9월 창설된 후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부대 표어처럼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였다.

훈련은 혹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오죽했으면 사단 유격장 비석에 ‘훈련은 무자비하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겠는가.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예비사단인데다 1년의 절반 가량이 야전 훈련이었다. 남한에서 가장 추운 대성산과 화악산 사이에 있어 겨울이면 영하 30도를 넘나들었다.

주특기 106은 전차 잡는 90㎜ 무반동총 병사다. 보병인 소총수들과 똑같이 행군을 하는데 21㎏인 90㎜ 무반동총을 완전 군장 위에 더 메고 간다. 도합 40㎏이 넘는 군장을 꾸리고 100㎞ 행군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 명이 낙오하면 그 짐을 분대원이 나눠 메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구타로 군기를 유지한다. 차라리 해병대나 특전사에 갔더라면 남들이 알아주기나 할 텐데. 군 생활 내내 내뱉고 산 말이다.

이기자 부대 해체설이 나오고 있다. 입대 자원 감소에 따른 부대 재편 방침에 따른 것이다. 제대 후 10여 년 동안은 힘든 시절을 잊기 위해 화천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30여 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청춘을 바친 부대가 사라진다니 추억의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가는 것 같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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