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왜덕산-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2년 09월 21일(수) 01:00
1597년 발발한 정유재란은 조선과 일본에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무덤을 남겼다. 일본 교토에는 일명 ‘귀 무덤’으로 불리는 코 무덤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 정면에 있는데 교토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와 묻은 무덤이다. 원래 코 무덤인데 잔인하다고 해 귀 무덤으로 바꿔 부를 뿐이다.

왜군들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의 코까지 베어 소금에 절여 보냈고 히데요시는 코 영수증을 써줬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무덤에만 12만 6000여 명의 코가 묻혀 있다고 한다. 조선인들을 전리품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의 잔인함과 조선인들의 원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반면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에는 명량대첩 당시 사망한 일본 수군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인근 울돌목에서 대패해 숨진 일본 수군들의 시체가 파도에 떠밀려 오자 마을 주민들이 수습해 묻어준 곳이다. 수습한 시신은 100여 구로 주민들은 수군 전사자들이 죽어서나마 고향 일본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동남향 해변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었다고 한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에서 ‘왜덕산’(倭德山)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향토사학자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의 노력으로 왜덕산의 이야기가 알려진 후 2006년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409년 만에 진도를 방문해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후손들은 이후에도 명량축제 때 왜덕산을 찾아 추모하면서 진도 주민들과 사죄와 용서, 화해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진도 사람들은 2016년부터 4년째 일본 교토를 방문해 코 무덤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3년째 중단된 상태다.

‘하나의 전쟁, 두 개의 무덤’이란 주제로 23일과 24일 진도에서 한일 국제학술대회와 왜덕산 위령제가 열린다. 행사에는 지난해 11월 교토 코 무덤 위령제에 참석해 “선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며 한국에 용서를 구한 하토야먀 유키오 일본 전 총리도 참석한다. 꽉 막힌 한일 관계의 해법을 왜덕산이 보여 준 휴머니즘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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