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실학자 재상 김육에게 길을 묻다-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2022년 08월 09일(화) 00:15
20세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실학을 배운 이들에게 현재 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20세기 실학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실학을 조선 후기 개혁 사상가의 실용적 학풍을 지칭하는 역사라고 공부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이가 다수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해와는 달리 한국사에서 실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말, 조선 초이다. 이 시기 성리학자인 이제현, 정도전, 권근은 성리학이 ‘허학’인 불교에 대비되는 ‘실학’이라고 하였다.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와 율곡도 성리학을 실학으로 인식하였다. 심지어 조선 후기 예론을 전개한 윤증도 예학을 실학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성리학을 실학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이전의 실학 연구를 비판하는 연구자들이 실학을 정약용, 이익, 박지원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개혁 사상가의 학문만을 지칭하는 역사 용어가 아니라, 조선시대 유학이 지니는 속성을 나타낸 일반 명사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실학이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기존의 실학 연구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비판도 함께하였다.

21세기 들어 실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이 요구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역사상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사이면서 동시에 현재사이다. 20세기 실학 연구는 연구하는 시점의 시대상이 철저히 투영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실학 연구는 과거사로서의 성격보다 현재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개항기 조선 사회는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이를 막아내고 근대적인 국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다. 그래서 이 시기 지식인들은 개항기가 당면한 국가 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조선 후기 개혁 사상가의 지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역사에 조선 후기 실학자를 소환한 것이다.

20세기 전반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은 식민지라는 참담한 현실에 좌절하였다. 식민주의 사학에 의해 한국 역사가 왜곡되고 민족 자주성이 부인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살았다.

식민지하 조선인들은 조선 사회의 유교가 식민지화의 원인이라 생각하였기에 유교를 버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식민지하 조선인 지식인들도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모두 외면하고 버릴 수는 없었다. 이때 지식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망국을 초래한 조선 성리학과 대척점에 있던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의 실용적인 학풍에서 조선시대 유교 문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다. 정약용 사상에서 유럽의 근대 사상가 루소와 견줄 수 있는 근대성을 찾았고, 실학에서 민족 문화의 우수성과 자주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항기와 식민지 시대 실학 연구는 구국적 방략에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는 1945년 해방 이후 남북한 학자의 실학 연구로 이어졌다. 해방 후 역사학의 과제는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었다. 식민주의 사학의 정체성과 타율성 이론을 극복하기 위해 내재적 발전론 관점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를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이행기로 파악하였다.

20세기 후반 역사학계가 이룩한 근대 지향적이고 민족적인 학문으로서의 실학 연구는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가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큰 에너지로 작동하였다. 한국 사회 근대화 동력이 한국 역사 내에 잠재되어 있음을 실학 연구와 내재적 발전론 관점에서의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 연구가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2020년대 들어 17세기에 당파를 초월하여 통합과 협치를 통해 당대 최고의 시대적 과제였던 대동법 개혁을 완수한 재상 김육이 소환되고 있다. 작금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로 통합과 협치를 입에 올리고 있다. 실학자 재상 김육의 소환은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21세기 실학 연구 성과이다. 21세기가 김육에게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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