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레거시’를 키우자-박진현 문화·예향담당국장, 선임기자
2022년 06월 28일(화) 23:00
며칠 전 지역에서 화가 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J가 안부를 전해 왔다. 오랜만에 연락한 그의 목소리는 사뭇 들떠 있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엄두도 못 냈던 해외여행을 다음 달 초 떠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과 함께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4월 23일~11월 27일)와 ‘2022 독일 카셀 도큐멘타’를 둘러보는 여정이라고 했다.

사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J가 흥분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미술 애호가라면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세계 최고의 메가 이벤트이지만 개최 시기가 달라 동시에 두 행사를 관람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코로나19로 ‘상황’이 변했다. 당초 지난해 예정됐던 베니스 비엔날레가 코로나19로 올해 개막하게 되면서 5년에 한 번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와 ‘극적으로’ 행사 기간이 겹쳐 관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베니스를 찍고 카셀로 넘어가는 빠듯한 일정이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두 개의 ‘미술 올림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건 관람객에게는 행운인 것이다.



유럽은 지금 미술 축제 중

비단 J뿐만이 아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평론가 Y도 오는 8월 광주 지역의 작가, 갤러리 관계자들과 함께 아트 투어를 떠난다. 첫 번째 방문지는 베니스와 카셀이지만 짬을 내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서 기획한 피카소전, 폴 세잔전 등도 두루 관람할 계획이다. 내로라하는 미술 이벤트들이 여름 시즌에 대거 몰려 있는 것은 특별한 휴가를 꿈꾸는 글로벌 애호가들을 유럽으로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올 초 영국의 유명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The Artnewspaper)가 ‘2022년 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전시회’ 리스트 톱 10을 일찌감치 소개한 것은 이런 문화계의 수요를 겨냥해서다. 전시도 보고 관광도 하고, 말 그대로 일석이조인 것이다.

미술 축제 하나로 유럽 전체가 들썩거리는 걸 보니 부러우면서도 착잡한 마음이 든다. 광주 역시 2년에 한 번씩 광주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가 교대로 열리는 미술의 도시이지만 축제 열기를 체감하기 힘들어서다. 실제로 광주비엔날레 기간 동안 국내외 미술 전문가들과 관람객이 줄을 잇지만 메인 전시 장소인 중외공원 벨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동구 예술의 거리에 관람객들이 넘쳐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명동, 양림동이 외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건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다. 게다가 내년이면 14회를 맞지만 연륜에 걸맞은 미술 인프라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미술의 도시다운 국제적 수준의 미술관은커녕 미술계의 대세로 떠오른 아트 페어는 메이저 화랑과 컬렉터들의 외면으로 존재감이 떨어진다.

물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셀 도큐멘타를 광주비엔날레와 비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1995년 창설된 이후 근 30년간 아시아 최고의 미술 축제라고 자부하면서도

광주는 왜 비엔날레를 하는가

‘비엔날레 특수’를 느껴보지 못하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비엔날레를 상징하는 레거시(Legacy)와 아카이브의 부재는 허탈감을 준다. 광주에는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 기간에는 광주비엔날레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작품과 기록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안양 예술공공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곳곳에 출품작들을 설치, 1년 365일 ‘지붕 없는 미술관’을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안양시와 해운대구 수영천변의 APEC 나루공원에 부산비엔날레 조각 프로젝트 유산(遺産)인 수십여 점의 명작을 남겨 ‘가장 걷고 싶은 길’로 꾸민 부산시의 사례는 광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축제는 끝났지만 시민들이 도시를 걸으면서 예술의 향기를 만끽하는 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광주비엔날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8일 (재)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장에서 펼쳐진 ‘비엔날레 미디어파사드 영상 아트’가 그것이다. 비엔날레 행사 기간이 아니면 방문할 일이 없었던 전시관에 모처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찾아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미디어아트의 향연을 누렸다. 또한 노후된 시설로 전시장은 물론 아카이브나 교육 시설을 기대하지 못했던 비엔날레 전시관이 오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신축을 추진 중이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모름지기 비엔날레는 문화 광주를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탄생시킨 근간이자 국제 미술계에 ‘광주’를 알리는 글로벌 브랜드라는 점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보이지 않는 가치에 만족하며 매달릴 수만은 없다. 매번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빅 이벤트이지만 전시가 끝나면 대부분의 작품이 철거돼 지역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광주는 왜 비엔날레를 개최하는가. 그리고 비엔날레 효과는 무엇인가. 지금부터라도 광주비엔날레의 가치와 내실을 키우는 ‘레거시’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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