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커피는 권력을 탐하고, 권력은 커피를 이용한다
커피는 권력을 탐하고, 권력은 커피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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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에게 알려진 커피는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기던 음료였다. 그러나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마셨던 ‘검은 음료’는 유럽과 전 세계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만큼 커피는 강렬한 욕망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급한대로 커피가 유럽의 역사를 바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프랑스 역사는 커피를 매개로 달라졌다. 고작 150cm 크기의 커피나무가 프랑스 역사 전면에 등장한 것은 1714년이었다. ‘루이 14세의 커피나무’는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에서 근무했던 전직 해군 대위 가브리엘 드 클리외의 머리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어렵사리 커피나무를 구한 그는 마르티니크로 가져가 심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후 커피는 엄청난 생산량을 기록하며 후일 커피산업과 무역의 판도를 바꾸기에 이른다.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호불호는 있지만 대체로 우호적이다. 한 집 건너 커피 전문점이 생겨날 정도로 커피 문화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직장인들은 하루에 서너 잔씩 커피를 마실 만큼 애호가들이 많다. 그러나 커피가 오늘날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적잖은 우역곡절이 있었다.
커피를 권력과 상업자본의 관계에서 조명한 책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는 “커피는 권력을 원하고 권력은 커피를 원한다”는 명료한 주제를 담고 있다.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시리즈 여섯 번째 책으로 발간했으며, 저자는 도쿄대 명예교수 우스이 류이치로이다. 그는 앞서 ‘빵과 와인이 돌고 신화가 돌고’, ‘아우슈비츠의 커피’, ‘말라버린 나무의 언어’ 등을 집필한 바 있다.
저자에 따르면 식용음료로 군대에 커피를 보급한 이는 나폴레옹이다. 그는 왜 병사들에게 커피를 허용했을까.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음료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커피를 마시면 피로가 가시고 힘이 나는 측면이 있다. 잠을 쫓을 뿐 아니라 일정부분 각성효과를 주기때문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군대에 대규모로 커피를 보급하기 위해선 관련 산업이 뒷받침돼야 가능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신조로 삼았던 나폴레옹은 많은 양의 커피를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련 산업을 추진했다. 직물기계를 개량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탕 제조, 색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쏟았다.
커피를 토대로 프랑스 산업은 전반적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의 커피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산업을 연쇄적으로 바꾸는 파급효과로 이어졌다.
이웃 나라 영국에서도 커피는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아 커피는 커피 하우스를 통해 영국에 전파됐다. 런던에 최초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것은 1652년이었다. 크로아티아인 파스카 로제는 무역 상인의 시종이었다. 매일 아침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이던 습관이 커피하우스 창업으로 이어졌다. 처음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지 30여 년만에 무려 3000곳, 1714년에는 8000곳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커피하우스는 오래 가지 못하고 추락했다. 아시아에서 차를 생산하는 식민지를 확보했던 영국은 자국에서 홍차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편들이 수시로 커피하우스에 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여성들이 다음과 같은 청원을 제기했다. ‘사막처럼 메마르고 쇠약하게 만드는 음료의 과도한 섭취로 인해 여성의 섹스에 야기된 심각한 불편을 공공에 호소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밖에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커피가 ‘니그로의 땀’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은밀하고도 잔혹한 이유는?’ ‘커피문명과 전쟁이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는 까닭’ 등은 평소 알지 못했던 커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를 일깨운다.
<사람과나무사이·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언급한대로 커피가 유럽의 역사를 바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프랑스 역사는 커피를 매개로 달라졌다. 고작 150cm 크기의 커피나무가 프랑스 역사 전면에 등장한 것은 1714년이었다. ‘루이 14세의 커피나무’는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호불호는 있지만 대체로 우호적이다. 한 집 건너 커피 전문점이 생겨날 정도로 커피 문화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직장인들은 하루에 서너 잔씩 커피를 마실 만큼 애호가들이 많다. 그러나 커피가 오늘날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적잖은 우역곡절이 있었다.
![]() 18세기 영국 커피하우스. <사람과 나무사이 제공> |
그러나 나폴레옹이 군대에 대규모로 커피를 보급하기 위해선 관련 산업이 뒷받침돼야 가능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신조로 삼았던 나폴레옹은 많은 양의 커피를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련 산업을 추진했다. 직물기계를 개량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탕 제조, 색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쏟았다.
커피를 토대로 프랑스 산업은 전반적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의 커피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산업을 연쇄적으로 바꾸는 파급효과로 이어졌다.
이웃 나라 영국에서도 커피는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아 커피는 커피 하우스를 통해 영국에 전파됐다. 런던에 최초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것은 1652년이었다. 크로아티아인 파스카 로제는 무역 상인의 시종이었다. 매일 아침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이던 습관이 커피하우스 창업으로 이어졌다. 처음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지 30여 년만에 무려 3000곳, 1714년에는 8000곳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커피하우스는 오래 가지 못하고 추락했다. 아시아에서 차를 생산하는 식민지를 확보했던 영국은 자국에서 홍차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남편들이 수시로 커피하우스에 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여성들이 다음과 같은 청원을 제기했다. ‘사막처럼 메마르고 쇠약하게 만드는 음료의 과도한 섭취로 인해 여성의 섹스에 야기된 심각한 불편을 공공에 호소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밖에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커피가 ‘니그로의 땀’이라는 섬뜩한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은밀하고도 잔혹한 이유는?’ ‘커피문명과 전쟁이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일 수밖에 없는 까닭’ 등은 평소 알지 못했던 커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를 일깨운다.
<사람과나무사이·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