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안차애 지음
2022년 05월 27일(금) 19:00
시는 보이는 것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또는 그 너머의 것을 노래하기도 한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시인은 늘 그렇듯이 현실 너머의, 실존 너머를 응시하고 소환하는 존재다.

2002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차애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를 펴냈다. 문학평론가 오민석(단국대 교수)의 표현대로 안 시인은 ‘행간에서 유령을 읽어내는 시인’이다. 오 평론가는 “시인은 명시성 너머의 비명시성, 가시성 너머의 비가시성, 결정성 너머의 비결정성의 세계를 계속 건드린다”고 평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슈만이 있는 풍경’을 보자. “오른손과 왼손 사이의 강물/ 알레그로풍의 연속 잇단음표는/ 서로를 흘러 다녀도 만져지지 않아// 얼굴의 물무늬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흐르는 사이/ 오른편의 악절 끝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어/ 떠오르거나 가라앉는 힘도 동력일까/ 물과 둑이 뒤섞이는 것도 변주일까…”

화자는 “얼굴의 물무늬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흐르는 사이”를 응시한다. 그 사이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 너머의 광활한 세계다. “선율의 내부가 우주처럼 열리고”에서 보듯 사이마다 무한한 ‘우주’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물의 사랑학’, ‘슥’, ‘허블’ 등의 작품에서 화자의 시선은 그 사이와 너머를 관통한다. 진중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정의 목소리가 그 안에 투영돼 있다. 아마도 “색깔에 들어 쉴 때가 많다. 새싹 샐러드 접시 같은 책 몇 권과 빨간 오미자소주 같은 몇몇 사람들이 젖은 모퉁이를 지켜 주었다”라는 시인의 말은 그런 시적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천년의시작·1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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