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일상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축적’이 삶을 바꾼다, 오늘도 자람
이자람 지음
2022년 04월 22일(금) 09:00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수십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빠른 장단으로 몰아치며 부르는 대목에 이르면 관객들도 어느 새, 망망대해 바다 위 한 척 배 위에서 노인과 함께 싸우는 입장이 된다.

세계 명작을 판소리로 재해석한 이자람의 작업은 획기적이다. 그는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사천가’를 프랑스 국립민중극장 등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면”으로 시작하는 노래 ‘예솔이’의 주인공 이자람은 전방위 예술인이다. 중요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그는 배우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2016년부터 국립창극단 객원 음악감독, 작창가, 연출가로 일한다. 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로 작사·작곡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의 판소리 작창 솜씨나,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글 쓰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이자람의 에세이 ‘오늘도 자람’은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상의 글들을 모았다.

프롤로그에서 “나는, 한국에서 예술교육을 받으며 자라 운 좋게 공연예술계에서 작품을 창작하며 그것으로 먹고 살고 있는 40대 여성 예술가”라고 말하는 그는 책에 담긴 40여편의 글을 통해 생활인으로 살아오며 알게된 이치,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고 부단히 노력해 온 과정 등을 들려준다.

매일의 일상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는 그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이는 보이지는 않는 ‘시간들’이라고 말한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그는 소리 공부를 위해 여러 선생을 만났다. 그의 ‘인생 세번째 마스터’ 송순섭 명창과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스승이 갑갑하게 막히는 일 앞에서 내 뱉던 말 “어찌 되얏든 다 되게 되어 있다”는 아마도이자람밴드의 곡 ‘Good Night’에 녹아 있다. “내가 제자인께 이렇게 생각하지말고 선생님을 능가할 수 있도록 욕심을 부리라고.” 이야기해주던 스승의 말씀은 먼훗날 누군가의 선생이 되었을 때 자신이 받은 좋을 것들을 잘 물려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쉽게 후져지더라. 대부분의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유지하고 팽창시키기 위해 인간적으로 사는 방법들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그 선택을 부끄러워해야 할 감각은 자신의 삶에서 그냥 삭제해 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에 그 때마다 만약 내 삶에 힘이 주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어떻게 운용해야 독이 아닌 것으로 흘러서 다른 곳으로 유용하게 이어질 것인가 고민하기도 한다.

<창비·1만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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