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래를 바꾼 미술관
2021년 06월 15일(화) 19:00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의정부시는 인구 46만 명의 중소도시다. 우리에겐 한국전쟁이후 70년간 미군이 주둔한 군사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다 보니 시민들을 위한 문화인프라 건립은 제약을 받았다. 실제로 인구 규모가 비슷한 경기도의 다른 도시에 비해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의정부시는 문화도시로 비상하는 담대한 비전을 내걸었다. 바로 ‘이건희 컬렉션’을 상설전시하는 전용관 건립이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이 회장의 기증 정신을 살리고 좋은 작품을 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오자 유치전에 뛰어든 것이다. 현재 가칭 ‘이건희 미술관’은 달빛동맹을 내세운 광주와 대구를 비롯해 서울, 부산, 여수 등 20여 곳의 지자체들이 뜨거운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의정부시의 이번 도전을 두고 국내 미술계 일각에선 다소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도 그럴것이 수도권의 교통중심지이지만 변변한 공립미술관이 없는 문화불모지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의정부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지난 2007년 주한미군으로 부터 반환된 캠프 잭슨 9만2천㎡에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국제아트센터, 예술인마을, 문화예술공원, 주민편의시설 등이 들어서는 복합문화단지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의정부시는 바로 이 곳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해 시너지 효과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궁극적으로 수십년 간 군사기지라는 이유로 문화소외를 받았던 경기도 북부의 자존심을 회복한다는 복안이다.

사실, 의정부시가 문화도시의 꿈을 꾸게 된 데에는 백영수 미술관이 있다. 지난 2018년 개관한 백영수 미술관은 신사실파 거장 백영수(1922~2018)화백의 의정부 호원동 자택에 들어선 사립 미술관으로, 의정부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하다.

수원 출신인 백 화백은 40여 년 전 도봉산에서 내려다 본 동네 풍경에 반해 연고도 없는 이 곳에 집과 작업실을 짓고 파리로 이민을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다. 지난 2011년 영구 귀국한 후 낡은 자택을 헐고 유럽풍의 미술관으로 건립해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사랑방으로 내놓았다.

백영수 미술관에 ‘날개’를 단 건 의정부시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술관 하나 없었던 의정부시는 개인미술관의 열악한 여건을 감안해 2019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 조례’에 의거해 공공요금, 인건비 등을 지원했다. 비록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의정부에 터를 잡고 작품활동을 펼친 백 화백의 스토리를 엮어 ‘거장의 예술혼이 숨쉬는 고장’으로 도시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다.

개관 이후 미술관을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의정부시는 지역민의 문화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전국 최초로 미술도서관을 개관한 데 이어 의정부예술의전당을 리모델링하는 등 도시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잘 만든 미술관은 도시의 브랜드, 나아가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이제 의정부시가 칙칙한 군사도시에서 화사한 문화도시로 변신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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