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은 편집부국장 겸 문화부장] 화요일의 음악 편지
2021년 02월 17일(수) 21:30
불필요한 내용으로 가득 찬 메일함을 열어 보는 건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매주 화요일이 되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메일함을 들여다본다. 지난해 12월부터 받고 있는 한 통의 메일 덕분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해 신청한 ‘어쿠스틱 위클리’(Acoustic Weekly: 음악과 이야기를 배송해 주는 메일링 서비스)로부터 음악이 첨부된 메일을 받고 있다. 피아노 전공자가 다양한 주제로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고, 정성스레 선정한 관련 영상을 링크해 걸어 준다.

아는 곡도 있지만 때론 낯선 곡을 접하기도 하는데, 세상의 무궁무진한 음악들 속에서 근사한 길라잡이를 만난 듯하다. 최근엔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E단조’를 재즈 음악으로 만났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푸치니 ‘잔니 스키키’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도 즐겁게 들었다. 운영자는 지금까지 55편의 편지를 보냈고, 연말에는 나처럼 뒤늦게 편지를 받아 본 이들을 위해 이미 소개한 음악을 한꺼번에 전해 주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또 다른 음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참 좋았다.



무궁무진 예술의 세계로

집에만 처박혀 ‘집콕’했던 설날 연휴 동안 책을 통해 한 인물을 만났다. 프랑스 작은 마을 오트리브에 ‘이상의 궁전’(팔레 이데알)을 지은 페르디낭 슈발(1836~1924)이다. 매일 30km씩 걸으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슈발은 편지에 붙은 우표나 그림엽서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43세가 되던 해 이상하게 생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그는 신기하게 생긴 돌멩이를 들여다보다가 “늘 꿈꾸던 건축물을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건축학이나 토목 기술도 배운 바 없었던 그는 이 때부터 낮에는 우편물을 배달하고 밤에는 길에서 주워 온 돌멩이와 조개껍데기를 쌓아 홀로 궁전을 짓기 시작한다. 드디어 76세가 되던 해. 33년의 긴 세월을 지나 ‘이상의 궁전’이 완성됐고, 196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역사 유적으로 인정받았다.

글을 읽자마자 관련 사진을 찾아봤다. 독특한 형상의 건물은 더욱 호기심을 자아냈다. 어찌 보면 조잡한 것 같기도 했지만,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성 있는 건물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낸 한 인간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새해가 밝고 계획 몇 개쯤은 세워 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 버린 나 같은 많은 이들은 설날을 맞아 ‘또다시’ 계획을 세웠으리라. 올해는 문화예술과 친구가 되는 ‘딜레탕트 아티스트’(dilettante artist)를 꿈꿔 보는 건 어떨까. 이탈리아어의 ‘즐기다’(dilettare)에서 비롯된 이 말은 ‘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삼아 하거나 애호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선은 예술과 친해지는 것이 먼저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집배원’을 신청하면 좋을 듯하다. 목요일 시와 소설 문장을 배달해 주는데, 작가들이 고른 문장을 성우 내레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읽고, 보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 생산자’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슈발처럼 거대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꿈을 담은 소소한 결과물을 받아들 때의 행복감은 그 어느 것에도 비기지 못하리라.

얼마 전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와 함께 광산구 이야기꽃도서관 그림책 전시회에 갔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 전시된 10권의 책을 본 나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와, ‘진짜 그림책’ 같네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평범한 시민들이 제작한 이 그림책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함께 간 이는 올해만큼은 꼭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33년간 홀로 세운 궁전

가디언 편집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도 도전 정신을 부추기는 책이다.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를 1년 안에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키리크스 파문,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사건 취재를 진두지휘하면서도 목표를 이뤄 냈다.

문화예술은 ‘생활 속’에서 생생하게 작동할 때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에서도 많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책 애호가라면 각 구청에서 운영하는 독서클럽에 관심을 가져 봐도 괜찮을 것이다. 더군다나 5인 이상이면 최고 70만 원을 지원해 준단다. 따뜻한 봄이 되면 공모에 선정된 문화단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할 터다. 놓치지 말고 자신에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보기를.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얼마 전 처음으로 ‘e북’을 접한 뒤 보고 싶은 잡지의 과월호(過月號)를 구입해 보고 있다. 아직은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종이책의 물성을 훨씬 좋아하지만, 새로운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듯해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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