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남도 한바퀴-순천] 자연·문화·추억의 위로…봄 길목 어깨가 펴진다
찬서리 뚫고 피어난 고운 자태 금둔사 납월매
옥리단길 아기자기한 골목 따라 역사·문화산책
젊은 문화공간 청춘창고·브루웍스·순천양조장
순천만 S자 갯골·와온 해변 장엄한 노을 감탄
옥리단길 아기자기한 골목 따라 역사·문화산책
젊은 문화공간 청춘창고·브루웍스·순천양조장
순천만 S자 갯골·와온 해변 장엄한 노을 감탄
![]()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순천만 S자 물길과 일몰은 ‘코로나 19’로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다독거려 준다. |
◇혹한 속 꽃망울 틔운 금둔사 납월매=‘동지섣달 꽃본듯이’라는 말이 있다. 좀처럼 꽃을 보기 힘든 음력 11월(동짓달)과 12월(섣달)에 ‘꽃본듯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혹한 속에서 정말로 꽃을 볼 수 있다면 어떠할까? 경상도 민요 ‘밀양 아리랑’에서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 좀 보소~!”라고 노래한다. 음력 섣달을 한자로 쓰면 ‘납월’(臘月)이다. 섣달에 피어난 홍매(紅梅)를 보기 위해 남녘으로 향한다. 순천 금둔사(金屯寺) ‘납월매’이다.
금둔사는 낙안읍성이 내려다보이는 금전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583년(백제 위덕왕 30년)에 담혜화상이 창건한 선종 가람이다. 1597년 정유재란때 불에 타 폐찰 됐으나 1983년부터 지허스님이 복원하고 중창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석조불비상은 보물 제945호·946호로 각각 지정돼 있다.
도량 내에는 남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납월 홍매 6그루를 비롯해 청매·설매 등 100여 그루의 토종 매화가 심어져 있다. 탐매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납월홍매마다 ‘0번째 나무’라는 명패에 꽃을 피우는 시기(1월말부터 3월까지)와 수령(1985년생)이 표시돼 있다.
“찬 서리 고운 자태 사방을 비춰(練艶霜輝照四隣)/ 뜰가 앞선 봄을 섣달에 차지했네(庭隅獨占臘前春)/ 바쁜 가지 엷게 꾸며 반절이나 숙였는데(繁枝半落殘粧淺)/ 개인 눈발 처음 녹아 눈물 어려 새로워라(晴雪初消宿淚新).…”
통일 신라말 문인 최광유가 지은 한시 ‘정매’(庭梅)이다. 당나라로 건너가 장안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뜰에 핀 매화를 보고 향수에 젖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둔 납자가 번역해 ‘납월매’라는 제목으로 건물벽에 붙여져 있는 싯구를 가만히 읊조려본다. 납월매는 지난해 12월부터 피기 시작했는데 1월 8~9일 북극발 한파때 시들어버렸다가 다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왜 납월 홍매는 수정해줄 벌과 나비가 없는 한겨울에 개화하는 걸까? 지허 스님은 매화나무에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납월은 부처님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12월 8일) 달이에요. 사람이 왜 태어나고, 죽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출가한지 6년 만에 깨달아요. 수분이 다 어는 한겨울에 어찌 꽃이 피나? 사람은 조금만 추워도 못 참는데 식물에게 추위 이상 가혹한 일이 없어요. 그 속에서 꽃이 핀단 말예요. 나무에게 배워야 합니다.”
금둔사에서 가까운 순천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동문밖 평석교 앞에 세워진 석구(石狗) 조각상이 이채롭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옹기종기 자리한 초가집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골목길 모퉁이를 돌면 수백 개의 장독대가 놓여있기도 하다.
◇도시재생 변모하는 순천 ‘옥리단길’=순천시 행동 중앙사거리 삼성생명 순천빌딩 앞에는 큼지막한 ‘문화의 거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문화의 거리는 순천 시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옥천변에 있어 ‘옥리단길’이라고도 불린다.
거리를 걸은 지 얼마 안 돼 골목책방 ‘서성이다’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메뉴’라는 제목을 단 빨간 입간판에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정지우) 등 모두 9권의 책 제목과 저자이름이 분필글씨로 적혀 있었다. 또한 벽면에는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랫말과 박노해 시인의 ‘서성이다’ 싯구가 게시돼 있었다. 유리창에 쓰여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동네책방 가는 길’ 문구를 보자 여행자의 발걸음은 절로 책방으로 들어섰다. 책방내 칠판에 적힌 오전·저녁 독서모임 공지를 보면서 책방이 시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기대하지 않은 아기자기한 공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등생 딸과 책방을 찾은 한 시민은 낯선 여행자에게 ‘문화의 거리’ 골목길을 여유롭게 걸어볼 것을 권했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옛 순천읍성 서문과 북문을 연결하던 골목길로 이어진다. 좁디좁은 골목길은 벽면에 소박한 새집모양 화분과 벽화로 꾸며져 있다. 행동 경로당 골목길은 근대 순천의 역사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순천고 학생들이 가교사(순천향교)에서 신교사로 옮겨가는 모습을 비롯해 순천부 읍성(順天府 邑城) 남문, 1910년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등 옛 기록사진을 보며 10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하는 듯하다.
서문안내소는 옛 순천부읍성 서문 터에 자리하고 있다. 1430년(조선 세종 12년)에 쌓기 시작해 1453년 완성됐고, 일제 강점기인 1916년에 헐렸다. 도시재생을 통해 마련된 매산뜰 주차장과 고지도 광장에도 순천의 역사가 담겨있다. 고지도 광장은 흥선 대원군이 집권하던 1872년 순천부 지도를 세밀하게 담아냈다.
행동 문화의 거리에는 공방과 갤러리, 카페, 전통 찻집, 작가 작업실, 맛집 등이 오밀조밀하게 몰려있다. 순천시와 시민들이 함께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 결과물이다. 시간을 여유롭게 갖고 싸목싸목 골목길을 걸으며 순천 문화예술과 역사를 소소하게 만끽해보면 좋을 듯하다. 순천역 인근의 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 문화공간 ‘청춘창고’와 ‘브루 웍스’(Brew Works), 카페 겸 수제 맥주 전문점 ‘순천양조장’ 또한 순천여행의 색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자연의 위로, 순천만 S자 갯골=겨울철 순천만 국가정원은 화려하지 않다. 동문으로 들어서 마주하는 ‘호수정원’은 순천만 습지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영국 건축가이자 조경가인 찰스 쟁스가 설계한 ‘호수정원’은 순천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호수 중앙 ‘봉화언덕’을 중심으로 동천을 나무데크로 형상화하고, 도심을 감싸는 산들을 작은 언덕으로 배치했다. 거대한 나선형 곡선 길을 따라 느릿하게 걷다보면 뭔가에 쫓기는 듯 한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오는 2023년에는 ‘정원에 삽니다’를 주제로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다.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떼가 멀고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순천만 습지에서 겨울을 나듯 ‘코로나 19’로 심신이 지친 여행자 발걸음도 절로 순천만 갈대밭으로 향한다. 이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발열체크와 QR코드 인식은 필수적인 절차다.
무진교를 건너기전 새떼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수백 마리 철새들이 내는 소리다. 순천만은 한국에서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이다. 용산 전망대까지는 2.3㎞. 도보로 30여분 거리.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데크를 따라 편안하게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은 경사진 나무계단길인 ‘다리 아픈 길’과 완만한 경사의 ‘명상의 길’로 나눠진다.
용산 전망대에 도착하니 눈앞에 너른 개펄이 펼쳐진다. 마침 물때가 저조기라 S자 갯골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동천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이다. 갯골을 통해 온갖 개펄 생물들이 육지로부터 유기물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한 듯 곡선을 이룬 물길은 저물어가는 해와 잘 어우러진다. 시나브로 하늘과 갯벌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지구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풍경이다.
와온(臥溫) 해변은 노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용산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게 되면 와온 노을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아쉬운 마음에 뒤늦게나마 와온을 찾아가니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여러분도 확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와온마을 방문을 당분간 자제 바랍니다. 와온청년회·주민일동.’
여행자들은 엄중한 ‘코로나 19’ 상황임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 여행자의 가벼운 발걸음이 자칫 주민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돼 마스크를 벗는 일상으로 되돌아가길 희망한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
/순천=김은종 기자 ejkim@kwangju.co.k
도량 내에는 남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납월 홍매 6그루를 비롯해 청매·설매 등 100여 그루의 토종 매화가 심어져 있다. 탐매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납월홍매마다 ‘0번째 나무’라는 명패에 꽃을 피우는 시기(1월말부터 3월까지)와 수령(1985년생)이 표시돼 있다.
통일 신라말 문인 최광유가 지은 한시 ‘정매’(庭梅)이다. 당나라로 건너가 장안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뜰에 핀 매화를 보고 향수에 젖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둔 납자가 번역해 ‘납월매’라는 제목으로 건물벽에 붙여져 있는 싯구를 가만히 읊조려본다. 납월매는 지난해 12월부터 피기 시작했는데 1월 8~9일 북극발 한파때 시들어버렸다가 다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왜 납월 홍매는 수정해줄 벌과 나비가 없는 한겨울에 개화하는 걸까? 지허 스님은 매화나무에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납월은 부처님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12월 8일) 달이에요. 사람이 왜 태어나고, 죽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출가한지 6년 만에 깨달아요. 수분이 다 어는 한겨울에 어찌 꽃이 피나? 사람은 조금만 추워도 못 참는데 식물에게 추위 이상 가혹한 일이 없어요. 그 속에서 꽃이 핀단 말예요. 나무에게 배워야 합니다.”
![]() 낙안읍성내에 자리한 장독대. |
◇도시재생 변모하는 순천 ‘옥리단길’=순천시 행동 중앙사거리 삼성생명 순천빌딩 앞에는 큼지막한 ‘문화의 거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문화의 거리는 순천 시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옥천변에 있어 ‘옥리단길’이라고도 불린다.
거리를 걸은 지 얼마 안 돼 골목책방 ‘서성이다’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메뉴’라는 제목을 단 빨간 입간판에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정지우) 등 모두 9권의 책 제목과 저자이름이 분필글씨로 적혀 있었다. 또한 벽면에는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랫말과 박노해 시인의 ‘서성이다’ 싯구가 게시돼 있었다. 유리창에 쓰여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동네책방 가는 길’ 문구를 보자 여행자의 발걸음은 절로 책방으로 들어섰다. 책방내 칠판에 적힌 오전·저녁 독서모임 공지를 보면서 책방이 시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기대하지 않은 아기자기한 공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등생 딸과 책방을 찾은 한 시민은 낯선 여행자에게 ‘문화의 거리’ 골목길을 여유롭게 걸어볼 것을 권했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옛 순천읍성 서문과 북문을 연결하던 골목길로 이어진다. 좁디좁은 골목길은 벽면에 소박한 새집모양 화분과 벽화로 꾸며져 있다. 행동 경로당 골목길은 근대 순천의 역사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순천고 학생들이 가교사(순천향교)에서 신교사로 옮겨가는 모습을 비롯해 순천부 읍성(順天府 邑城) 남문, 1910년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등 옛 기록사진을 보며 10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하는 듯하다.
서문안내소는 옛 순천부읍성 서문 터에 자리하고 있다. 1430년(조선 세종 12년)에 쌓기 시작해 1453년 완성됐고, 일제 강점기인 1916년에 헐렸다. 도시재생을 통해 마련된 매산뜰 주차장과 고지도 광장에도 순천의 역사가 담겨있다. 고지도 광장은 흥선 대원군이 집권하던 1872년 순천부 지도를 세밀하게 담아냈다.
![]() 농협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청춘창고’. |
◇자연의 위로, 순천만 S자 갯골=겨울철 순천만 국가정원은 화려하지 않다. 동문으로 들어서 마주하는 ‘호수정원’은 순천만 습지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영국 건축가이자 조경가인 찰스 쟁스가 설계한 ‘호수정원’은 순천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호수 중앙 ‘봉화언덕’을 중심으로 동천을 나무데크로 형상화하고, 도심을 감싸는 산들을 작은 언덕으로 배치했다. 거대한 나선형 곡선 길을 따라 느릿하게 걷다보면 뭔가에 쫓기는 듯 한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오는 2023년에는 ‘정원에 삽니다’를 주제로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다.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떼가 멀고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순천만 습지에서 겨울을 나듯 ‘코로나 19’로 심신이 지친 여행자 발걸음도 절로 순천만 갈대밭으로 향한다. 이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발열체크와 QR코드 인식은 필수적인 절차다.
무진교를 건너기전 새떼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수백 마리 철새들이 내는 소리다. 순천만은 한국에서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이다. 용산 전망대까지는 2.3㎞. 도보로 30여분 거리.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데크를 따라 편안하게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은 경사진 나무계단길인 ‘다리 아픈 길’과 완만한 경사의 ‘명상의 길’로 나눠진다.
용산 전망대에 도착하니 눈앞에 너른 개펄이 펼쳐진다. 마침 물때가 저조기라 S자 갯골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동천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이다. 갯골을 통해 온갖 개펄 생물들이 육지로부터 유기물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한 듯 곡선을 이룬 물길은 저물어가는 해와 잘 어우러진다. 시나브로 하늘과 갯벌이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지구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풍경이다.
와온(臥溫) 해변은 노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용산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게 되면 와온 노을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아쉬운 마음에 뒤늦게나마 와온을 찾아가니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여러분도 확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와온마을 방문을 당분간 자제 바랍니다. 와온청년회·주민일동.’
여행자들은 엄중한 ‘코로나 19’ 상황임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 여행자의 가벼운 발걸음이 자칫 주민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돼 마스크를 벗는 일상으로 되돌아가길 희망한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
/순천=김은종 기자 ejkim@kwangju.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