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톡톡-박재훈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1년] 일그러진 정의감
2020년 12월 21일(월) 23:00
지난 12월 13일 성범죄자 조두순이 마침내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그가 출소하자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징역 12년이라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양형에 대해서도 비난이 일고 있다. 그의 재범을 우려하며 안산시가 중앙 정부 및 국회에 요청한 이른바 ‘조두순 격리법’인 ‘보호수용법’ 제정 필요성에 안산시민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등 조두순을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멀리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고 있는 형세다.

하지만 작년에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다른 반응이 나타났다. 서울 구로구의 한 모텔 종업원이었던 장대호는 투숙객 A씨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시신을 토막 내 한강에 유기했다. 장 씨는 시신을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 5차례 걸쳐 한강에 버렸다. 이후 그는 모텔의 CCTV 영상을 삭제하고 시신 유기 닷새 후인 17일 오전 1시쯤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장 씨는 A씨가 반말을 하며 숙박비 4만 원을 주지 않으려 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항간에 따르면 장대호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평소 반사회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인물로 성장했다고 한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그가 인터넷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은둔형 외톨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2019년 8월 20일 경찰은 피의자 장대호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체포 후 언론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음 생에 또 그러면 너 나한테 죽어”라는 발언을 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대법원은 장 씨의 반성 없는 태도를 지적하며 지난 7월 29일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범행 수단 및 방법이 잔혹하고, 피고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생명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을 보이고 있지 않은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원심의 판단인) 무기징역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피해자와 사법부까지 조롱하는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것만이 죄책에 합당한 처벌”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런 그의 얼토당토않은 행동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었다. 인터넷 댓글에서는 피해자가 유흥업소 사장, 깡패라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유포되며 피해자를 ‘죽어도 싼’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그 후 피해자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조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근거해 살인범인 장대호를 정의를 실현한 의인이라는 뉘앙스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사건 한 달 후, 시신의 절반도 찾지 못한 채 유족은 피해자의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피해자 이 씨는 변을 당하기 전 다섯 살 아들과 둘째를 임신한 아내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사건 후 이 씨의 아내는 아이를 유산했고 갑상선암을 판정받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으로 일그러진 정의감으로 포장된 여론 속에서 장대호의 이름은 올해 초 갑자기 공개된 그의 자칭 ‘회고록’을 통해, 물론 일부이지만 다시금 영웅(?)으로까지 묘사되고 있다.

장대호에 대한 인터넷상의 유별난 반응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가 바라는 정의가 무엇인지 크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는 아무런 근거 없이 피해자를 감정적으로 재단한다. 이런 근거 없는 여론에 휩쓸려 흉악 살인범을 의인이라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범죄자에게 관대하다며 사법제도를 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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