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걸어다닐 때는 알지 못한 것
2020년 12월 08일(화) 22:10
임 혁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년
최근 들어 날씨가 쌀쌀해져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학교까지 걸어 다니게 되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동 킥보드였다. 낱개 혹은 한 쌍의 전동 킥보드가 눈 닿는 구석구석마다 놓여 있었다. 어느 날은 인도 위에 십여 대의 전동 킥보드가 일렬로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 탓에 사람들이 인도 밖으로 통행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보였다.

누군가의 민원 탓인지, 아니면 회사 측의 뒤늦은 자성이 있었는지 다음날이 되니 인도 위에 줄지어 있던 전동 킥보드는 자취를 감추었다.

전동 킥보드가 늘어서 있던 곳은 평소에 가족 단위로 산책이나 나들이를 자주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괜히 아이들이 타 보려 하거나 뛰어다니다 부딪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걱정이 시작되니 다른 걱정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따랐다. 결국에는 평소 그 길을 걷던 장애인에게는 전동 킥보드가 갑자기 생긴 커다란 장애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앞서 내가 보았던 인도 위 전동 킥보드뿐만 아니라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내리막길 앞이나 장애인 주차장 주변에 정차된 전동 킥보드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세워 놓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연히 목적지가 장애인 주차장이나 내리막길 앞이거나, 점자 보도블록 위였을 뿐이고 정차 후 인증 사진을 찍을 때는 눈에 안 들어왔을 것이다. 물론 전동 킥보드를 아무 장소에나 주차한 이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불편함을 느껴야만 그제서야 타인의 불편함을 생각하는 모습은 무분별하게 전동 킥보드를 주차한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

불편을 넘어선 위협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요즘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항균 필름이 덮인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항균 필름이 붙어 있는 층수 버튼에는 점자도 함께 적혀있다. 즉, 항균 필름이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도록 방해한다. 또 감염 위험 때문에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면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QR코드 인증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런 비대면 소통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대책이 따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은 주로 수화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손동작과 함께 입 모양,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청각 장애인의 의사소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그 결과 일상 속 불편함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의 학습권 침해, 병원에서는 건강권의 침해까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마스크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시즌 1을 마무리한 유튜브 ‘네고왕’의 출연자 한광희 씨가 착용한 투명 마스크와 같은 대체품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재 투명 마스크는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를 통해 소량 생산만 이루어지고 있다. 적어도 교육 현장이나 의료 현장과 같은 곳에서는 모두가 차별받지 않도록 투명 마스크가 지급되길 바란다.

우리가 전동 킥보드를 주차하는 순간,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항균 필름을 붙이는 순간에 장애인들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일상 속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한 것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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