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와 조탁
2020년 11월 20일(금) 00:00
신문에서 편집기자의 제목 뽑기는 시인이 시를 쓰는 작업과 비슷하다. 긴 문장의 기사를 최대한 압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간결해야 하며 때로는 은유와 대구(對句)도 필요하다. 감성의 시각화로 시처럼 여운을 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래서 편집기자는 순발력은 물론 뉴스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독자는 제목을 통해 기사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치게 하는 언어의 조탁(彫琢)이나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언어유희는 특히 스포츠면 제목에서 꽃을 피운다. 지금까지 광주일보 등에서 편집기자들이 차려 놓은 언어의 성찬을 음미해 보자.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에서 박찬호가 빛나는 투구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헤드라인은 ‘다저스 파크(PARK)에는 즐거움이 있다’였다. 류현진이 완투승을 하면 ‘일류’, 부진하다 다시 잘 던지면 ‘Ryu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선수들의 성씨를 활용한 재치 있는 제목들이다.

PGA에서 타이거 우즈가 2000년 메이저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자 그랜드 슬램을 넘어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도 편집기자다. 2013년 LPGA 슈퍼스타 박인비가 메이저를 휩쓸 땐 ‘인비 슬램 GO’라는 제목을 썼다. 최경주가 PGA 8승을 거두는 사이엔 이름 K.J.CHOI에 맞춰 ‘굿 초이스’라는 제목이 등장하기도 했다.

유럽 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은 맨유의 ‘센트럴 파크’였다, 성실한 플레이로 골을 넣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제목도 나왔다. 손흥민의 대활약에는 ‘손세이셔널’ ‘손하트’ ‘황금손’ ‘슈퍼손데이’ 등 플레이만큼 화려한 제목이 줄줄이 이어졌다. 지난해 6월 U-20 월드컵축구에서 대한민국이 결승에 진출했을 때엔 ‘2강 in’이라는 제목이 광주일보 1면을 장식했다. 결승(2강) 진출(in)을 이강인의 이름과 연결한 언어의 조탁이다. 그러나 불세출의 뛰어난 선수라 해도 부진이 계속되면 덩달아 편집기자들의 언어유희도 멈춘다.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축구 A매치가 잇따라 열리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도 계속된다. 좋은 시가 마음을 정화하듯 광주일보에 실린 제목 한 줄이 독자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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