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사람들’이 쏘아 올린 공
2020년 09월 23일(수) 00:00
미술관에 들어서자 은은한 자태를 뽐내는 ‘백련’(김현수 작)이 시선을 잡아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그날’의 숭고한 정신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조형물이다. 작품 하나로 평범했던 로비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전시장 동선을 따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낯익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구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상무관의 대형 모형들이 1980년의 금남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초등학교 5학년때 경험했던 정정주 작가의 ‘그날’을 소환한 ‘응시의 도시_광주’는 모형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당시 현장에 있는 듯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광주시립미술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이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초 5월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지난 8월15일에 개막한 전시는 기존과는 다른 과감한 시도와 새로운 감각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과거 5월 전시의 주요 흐름이었던 고발 중심의 리얼리티 묘사 대신 은유와 암시로 광주정신의 미래를 내다 본 기획이 통한 것이다.

실제로 이 전시는 국내 주요 공립미술관 관계자들 사이에 ‘핫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시립미술관의 행사에 참석한 후 전시를 관람한 이태호 미술평론가, 변종필 제주현대미술관장, 최은주 대구시립미술관장,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제1~4전시실과 로비 등을 무대로 꾸며진 미술관 전시가 마치 하나의 ‘오월 광주’를 연상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현재 코로나19로 전시관람이 여의치 않지만 특별전의 메시지를 대중에 알릴 필요가 있다며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김 학예실장은 “5월 관련 전시들은 이미 여러번 관람했던 터라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내외 유명 작가들을 참여시켜 완성도 높은 전시를 풀어낸 미술관의 역량이 놀랍다”고 말했다. 특히 미래지향적인 이번 전시는 5·18의 유산을 기억할 수 있는 잠재력이 높은 만큼 지역순회전을 통해 전국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조언했다. 즉, 내년 1월31일 전시가 끝나면 광주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제주 4·3 운동과 연계해 보다 많은 이들이 5·18 40주기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알다시피, 올해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비엔날레 등 5월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내년으로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립미술관의 특별전이 지닌 의미는 크다. ‘신화가 된 오월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현재화하고 스펙터클한 전시 연출을 통해 문화광주의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이 된 사람들’의 전국화를 이뤄내기 위해선 지역민들의 관심이 먼저일 것이다. 마침, 광주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완화 조치로 미술관 등 공공시설이 개방된다고 하니 직접 전시장을 둘러 보자. 아무리 좋다한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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