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향한 그리움으로 정성껏 차린 한상차림, 다큐영화 ‘밥정’(情)
2020년 06월 23일(화) 15:20
“밥은 먹었나?”

지난 2009년 2월 어느 날,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는 요리에 사용할 감 재료를 찾기 위해 지리산자락으로 훌쩍 길을 나섰다. 그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단천(檀川)마을에서 쪼그려 앉아 냉이를 캐는 김순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낯선 외지 사람인 그에게 먼저 밥을 먹었는지를 물었다. 하루종일 굶어 너무 배가 고팠지만 차마 대답을 못하는 그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집에 온 손님인데 밥은 먹여야지… 그렇지 않소.”

김 할머니는 불을 때 밥을 짓고 냉이국을 끓여 상을 내왔다. 된장만 풀어서 끓인 평범한 냉이국이었다. 하지만 ‘생이별한 친어머니’와 ‘가슴으로 기르신 양어머니’, 두 분의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했던 그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와 같았다. 그날 이후 그는 김 할머니와 모자의 인연을 맺고 10여년의 정을 쌓았다.

영화 ‘밥정’은 ‘방랑식객’으로 불리는 산당(山堂) 임지호 자연요리연구가의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음식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러닝타임 82분)이다. 방송국 PD 출신인 박혜령 감독이 임 쉐프의 음식 여정을 10년에 걸쳐 묵묵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영어 제목은 ‘The Wandering Chef’이다.

영화는 그가 산과 바다, 들판, 계곡 등 우리 땅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재료삼아 차리는 요리과정과 밥상을, 따뜻한 봄날부터 눈이 내리는 한겨울까지 사계절 풍광 속에 녹여내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10여년 인연을 맺은 ‘길 위의 어머니’인 김 할머니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김 할머니가 90살을 앞두고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그는 낳아주고, 길러주고, 정을 나눠준 ‘세 명의 어머니’를 위해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한상차림을 준비한다. 실제 음식을 담은 접시 103개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5가지 자세를 상징하는 접시 5개 등 모두 108개의 접시를 상에 올린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 한편을 가족에게 바치듯이 임지호 쉐프를 통해 음식의 치유력을 보여준다.”(Toronto Guardian)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관객을 평온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만든다.”(In the Seats)

“감독이 포착한 모든 장면에는 인생의 소박한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훌륭한 다큐멘터리이다.”(Filmink)

영화 ‘밥정’은 세계 최고 권위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캐나다 ‘핫 독스(Hot Doc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시드니 영화제, DMZ 국제 다큐영화제 등 국내외 14개 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북미 아시아 영화 전문매체인 AMP가 영화 ’밥정‘을 ’2019 베스트 아시아 다큐멘터리 TOP 20‘에, 캐나다 <토론토 가디언>이 핫독스 국제 다큐 영화제에 초청된 234개 작품가운데 ‘꼭 봐야할 작품 TOP10’에 선정하는 등 좋은 평가를 내렸다. 배우 김혜수 또한 “(영화 ‘밥정’은) 10년의 임지호 쉐프의 여정 속에서 내 마음이 돌아갈 자리가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며 적극 영화 홍보에 나서고 있다.

박혜령 감독은 “임지호 선생님의 지식과 음식마다 갖고 있는 스토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돼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피로회복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영화 ‘밥정’은 당초 3월초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연기돼 가을에 전국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게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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