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알랭 바디우 지음, 박성훈 옮김
2020년 04월 10일(금) 00:00
공군 군악대 소속의 병장이던 겨울밤, 난로를 끄고 추위에 떨고 있을 때, 한 병사가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라며 샹송을 노래한다. 여덟 살 때는 빛이 들지 않는 복도에 아이 둘을 서 있게 하는 ‘한밤의 소리’ 게임에서 어둠을 경험했고, 열 살엔 농장에서 우유를 가져오라는 밤길 심부름에서 만난 검은 개로 인해 두려움에 떨었다.

검은색에 관한 사유들을 담은 ‘검은색(LE NOIR)’이 출간됐다. 프랑스 철학자인 저자 알랭 바디우는 ‘무색의 섬광들’이라는 부제로 ‘검은색’ 앞에 떠올리는 21가지의 사유를 이야기 한다.

어둠, 밤, 석탄, 잉크, 검은 개, 음흉함, 적과 흑, 블랙 유머, 고래, 검은 표범, 흑인 등 그가 검은색에서 연상해낸 주제는 예술 정치 철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잉크통’에서 그는 “글을 배우며 접하게 된 까만 잉크통은 문장이 굽이쳐 나오는 기적, 문자가 된 사유에 대한 경이로움을 발견케 하는 매개가 된다”고 전하며 ‘검은색 표시’에서는 “서구의 에로시티즘에서 검은색은 대상의 내놓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어떠한 몸도 욕망의 암흑 속에서 검은색으로 치장된 동일한 몸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 자체로 할 능력은 없다”고 말한다.

바디우는 또 검은색에서 변증법을 발견한다. 그가 말하는 ‘검은색의 변증법’은 무색(無色)으로서의 검은색과 모든 색의 뒤섞임인 흰색 사이의 내적 논리다.

마지막 장 ‘백인들의 발명품’에서 저자는 “인간이 바라는 보편적 차원에서는 백인도 흑인도 결코 실존할 수 없다. 인류는 그 자체로 색깔이 없다”고 말한다.

<민음사·1만2000원>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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