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5월 23일 ‘주남마을 시민학살’
![]() <삽화 이정기> |
고등학교 자퇴생 시민군 안성옥은 도청 식당밥보다 집밥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도청에서 잠자지 않고 지원동의 한 상가옥상에서 경계를 서다가 그 집 작은방으로 들어가서 곤히 늦잠을 잤는데, 걸게 차린 아주머니의 아침상을 받았던 것이다. 된장시래기국과 계란찜은 물론이고 상추에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쳐서 조물조물 묻힌 겉절이가 무엇보다 반가웠다. 어머니 손맛과 흡사했다. 어찌나 맛있던지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밤새 경계를 함께 섰던 또래의 시민군도 게걸스럽게 숟가락질을 했다.
두 사람은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카빈소총을 어깨에 헐렁하게 맨 채 지원동다리로 나갔다. 지원동다리는 지원동 시민군 소대본부가 있는 지형지물이었다. 소대장이 안성옥을 보자 큰 소리로 말했다.
“안 보여서 죽은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늦잠을 자부렀그만요.”
“자네 어머니가 자네를 만나러 오셨다가 잠시 으디로 가셨네. 긍께 멀리 가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소대장 말대로 10시 30분쯤에 어머니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왔다. 화정동에서 지원동까지 20여 리를 걸어서 온 모양이었다. 안성옥은 뜻밖의 일이었으므로 놀랐다.
“엄니! 어처께 오셨소?”
“니 속옷을 갖고 왔다.”
“도청에서 밤에 수도꼭지를 틀어 빨아입그만이라우. 근디 뭣헐라고 가지고 왔소.”
“니 사촌 성덜이 여그 있다고 갈켜주더라. 이놈아! 느그 성덜은 데모를 허드라도 잠은 집에서 잔다. 니는 으째서 메칠 동안 안 들어오냐. 속이 타 죽겄다. 얼능 집에 가자.”
“엄니, 하룻밤만 더 있다가 들어갈라요.”
“글먼 속옷이라도 큰집에 가서 갈아입어라.”
“그랄라요. 긍께 엄니는 내 걱정 말고 화정동으로 가씨요.”
안성옥의 큰집은 방림동에 있었다. 보따리를 받아든 안성옥은 방림동 큰집으로 어머니와 함께 갔다. 방림동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지원동을 거쳐 가는 개울물이 합수하는 광주천변에 있었다. 큰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들어간 안성옥은 속옷만 갈아입고 곧 일어나 버렸다. 점심이나 먹고 가라 했지만 아침을 늦게 한 바람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머니는 안성옥이 벗어놓은 더러운 속옷을 챙겼고, 안성옥은 바람같이 지원동다리 쪽으로 올라갔다.
오전 11시쯤 일신방직 여공 김춘례는 기숙사 선배인 고영자와 함께 도청에 도착했다. 고영자는 공장 내에서 친동생처럼 아끼던 김춘례가 할아버지 제삿날이라며 화순에 가자고 성화를 부려 따라나섰다. 시외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도청 시민군들에게 하소연해볼 참이었다. 김춘례는 도청 상황실로 들어가 사정했다.
“할아버지 기일인디 화순 가는 차가 ?을께라?”
“뭣이라고라!”
상황실 간부가 어이없어 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어서 화순으로 가려는데 차가 없느냐는 생뚱맞은 말에 기가 막혔던 것이다. 김춘례보다 다섯 살 위인 고영자가 말했다.
“동생이 무조건 화순까지 데려다주라는 말이 아니라 가는 차가 있냐고 묻그만요.”
고영자가 조근조근 말하자 상황실의 또 다른 간부가 말했다.
“이리 오씨요. 관을 구하러 화순 간다는 말이 있든디 한 번 민원실로 가봅시다.”
민원실 앞에는 관들 주위에 시민군들이 서성거렸고, 소형버스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상황실 간부가 소형버스를 운전하는 벽돌공장 노동자 김윤수에게 물었다.
“이 차가 관 구하러 화순 가요?”
“맞소.”
“누가 가기로 했소?”
“시방 갈 사람을 정하고 있는갑소.”
운전기사 말대로 잠시 후 민원실 안에서 8명이 나왔다. 상황실 간부가 일일이 이름과 직업을 적었다. 신의여고 3학년 박현숙, 춘태여고 1학년 홍금숙, 화천기공사 공원이자 방송통신고생 황호걸, 송원전문대 1학년 백대환, 그밖에 장발한 청년 시민군 2명과 교련복 바지를 입은 고등학생 시민군 2명의 이름도 적었다. 김춘례와 고영자는 마지막으로 차에 타면서 이름과 일신방직 여공이라는 직업을 알려주었다.
소형버스는 전남대병원을 거쳐 지원동으로 달렸다. 소형버스가 지원동 초입에 들어서자 이발소 주인이 뛰어나와 말렸다.
“모두 죽은께 가시 마씨요!”
“우리는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요. 관을 얻으러 가요.”
장발한 청년 시민군이 카빈소총을 창밖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그러나 소형버스가 지원동 버스종점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왼편 산자락에 매복해 있던 장교 1명과 무전병이 11공수여단 본부에 소형버스가 화순방향으로 간다고 보고했다. 3,4분 뒤였다. 지시를 받은 장교가 사격을 했다. 그제야 운전기사 김윤수가 공수부대원이 매복해 있음을 알고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소형버스는 100미터도 달리지 못했다. 주남마을 앞에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김윤수는 즉사하고 소형버스는 벌집이 되어 옆으로 굴러 나동그라졌다. 공수부대원들은 만신창이가 된 소형버스에 또다시 확인사격을 했다. 그런 뒤 공수부대원 팀장이 말했다.
“전원 사살인가? 가서 확인해 봐.”
“산 놈이 있습니다. 비명소리가 납니다.”
“끌어내.”
소형버스 안에는 8명이 즉사한 채 의자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남녀 3명이 중경상을 입은 채 끌려나왔다. 손에 총을 맞은 여고생 홍금숙은 두려움으로 혼절하기 직전이었고, 교련복을 입은 시민군 2명은 숨만 붙어 있었다. 한 사람은 눈알이 빠져버렸고, 또 한 사람은 몸에 총을 맞아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공수부대원들은 3명을 경운기에 태우고 가다가 좁은 산길에서는 부상이 심한 시민군 2명을 훔쳐온 리어카에 싣고 홍금숙은 걷게 했다. 여단본부가 가까운 곳에 있는 듯했다. 무전연락을 받은 공수부대 대대장인 소령이 내려왔다. ‘엄니, 엄니’ 하면서 의식을 찾은 시민군 한 명이 소령에게 빌었다.
“살려주씨요. 관을 얻으러 댕긴 죄밖에 ?습니다.”
“총을 쏴봤지?”
“그런 적 ?습니다. 하느님께 맹세할랍니다.”
“개자식, 이놈들 호주머니를 수색해!”
한 시민군의 호주머니에서 카빈소총 실탄이 두 개가 나왔다. 그러자 소령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 폭도구만. 밑에 데리고 가 처치해.”
하사 1명과 사병 2명에게 지시했다. 잠시 후 네 발의 총성이 주남마을 뒷산 골짜기를 울렸다. 순간 홍금숙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얀 백지 같은 상태가 돼버렸다. 혼절했다가 겨우 정신을 되찾았다. 그때 공수부대원끼리 주고받는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교복 입은 이 여학생은 폭도들에게 속아서 차를 탄 것 같습니다.”
“병원으로 보내!”
홍금숙은 ‘폭도’라는 말을 ‘악마’로 듣고는 정신을 다시 잃어버렸다. 홍금숙이 눈을 뜬 곳은 시민군 부상자들이 북적거리는 전남대병원 병실이었다.
공수부대가 화순으로 가던 시민군 소형버스에 집중사격을 했다는 급보는 박남선에게도 전해졌다. 박남선은 도청 상황실에서 비상을 걸었다. 즉시 시민군을 태운 기동타격대 지프차와 트럭들이 지원동으로 출동했다. 상황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식당 종업원 김선문과 농사꾼 김용호도 트럭에 올라탔다. 오후 2시쯤이었다. 트럭 3대가 지원동 버스종점이 보이는 도로에서 멈추었다. 벌써 공수부대원과 시민군들이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김선문은 겁이 나서 덩치가 큰 김용호 뒤에 섰다. 김용호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했다. 두 사람은 카빈소총을 잘 쏘지 못했다. 공수부대원이 있는 곳까지 카빈 총알이 날아가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이 쏘는 엠16 총알은 핑핑 머리 위로 날았다. 두 사람은 전봇대 뒤에 숨어 있기만 했다. 기동타격대원이 되어 막상 오기는 했지만 도청 안에 남아 시신을 염하는 박래풍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총성이 잠깐 멈춘 틈에 트럭으로 되돌아와 짐칸에 오른 뒤 머리를 푹 숙였다. 한참 만에 총구를 전방으로 겨누었다.
그런데 모든 시민군이 두 사람처럼 겁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지원동 시민군 소대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총격전을 벌였다. 공수부대원들과 4,5백 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며 전봇대 뒤나, 건물 옥상 등 사격하기 좋은 위치에서 총을 쏘았다. 공수부대원들은 지원동 버스종점까지 내려와 버스 밑에 엎드려 있다가 응사하곤 했다. 주남마을 입구에 나동그라진 소형버스를 은폐하기 위한 작전이 분명했다.
속옷을 갈아입은 안성옥은 신축공사 중인 영락교회 현관에서 사격자세를 취했다. 현관 주변에도 지원동 시민군 소대원 몇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안성옥이 공수부대원을 향해서 사격을 할 때였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무기수송차가 왔어! 실탄을 가져와!”
뒤돌아 살펴보니 지원동다리에 무기수송차가 와 있었다. 안성옥은 총격이 뜸한 틈을 타 지원동다리로 뛰어갔다. 소대장이 안성옥이 달려온 이유를 알고는 철모에 실탄 150발 가량을 담아 주었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저그 모래가 있는 곳으로 얼능 뛰어!”
안성옥은 공사장 모래더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가 뒤쪽에 누웠다. 총알이 빗발쳤지만 모래더미 뒤는 안전했다. 안성옥은 가쁜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노인 한 분이 소주와 과자를 가지고 왔다. 노인이 호주머니 속에서 유리잔을 꺼내며 말했다.
“고생허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심내게.”
“할아버지! 위험헌께 들어가세요.”
“괜찮네. 나도 자네덜 같은 자식을 키운 사람이네. 쩌그 있는 사람덜도 같이 마시게.”
영락교회 주위에 있는 시민군들도 교대로 와서 한 잔씩 마시며 실탄을 배급받았다. 안성옥도 한 잔을 마시고 영락교회 현관으로 와서 엎드렸다. 소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 퍼지자 뱃심이 더 생기는 듯했다. 조금 뒤에는 신축중인 교회 지하실에서 임시로 살던 목사부부가 올라왔다.
“쌀이 떨어져 라면밖에 없소. 라면 한 박스를 끓여놓을 테니 교대로 와서 드시오.”
“목사님, 감사합니다요.”
술 한 잔 한 뒤 새참으로 라면은 더 없는 별미였다. 시민군들은 총격이 멈출 때를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지하실로 내려가 계란을 넣고 끓인 라면을 먹었다. 안성옥도 차례가 되어 식어버린 라면을 포만감이 들 때까지 훌훌 넘겼다.
그런 뒤, 사격위치를 길 건너 두 번째 전봇대로 바꾸었다. 첫 번째 전봇대 뒤에는 20대 초반의 시민군 소대원이 엠1소총 노리쇠를 당기고 있었다.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총격을 가하자 위아래 푸른 옷을 입은 그가 맥없이 쓰러졌다. 안성옥이 낮은 자세로 달려가 물었다.
“으째서 그라요?”
“총 맞았소.”
그가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으디요?”
허벅지와 배 사이를 손으로 움겨 잡고 있던 그가 안성옥의 말을 듣고는 손을 뗐다. 그제야 그의 하복부에 붉은 피가 흘렀다. 안성옥은 그의 허리를 힘껏 잡고 기어서 나협회로 갔다. 안성옥을 본 소대원 한 명이 길 건너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안성옥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소리쳤다.
“차를 보내주씨요!”
그러자 지원동다리 쪽에서 지프차 한 대가 후진해서 올라왔다. 공수부대원들은 지프차를 향해서 거칠게 집중사격을 했다.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소대원은 총에 다리를 맞아 쓰러지고 차바퀴 하나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운전기사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몸을 피했다. 안성옥은 또다시 부상당한 소대원을 부축해서 지원동다리까지 내려갔다. 소대장이 부상당한 소대원을 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낸 뒤 말했다.
“자네는 운이 좋아. 총알이 자네를 피해서 댕기는 거 같아.”
“헤헤. 속옷을 갈아입어서 그럴께라? 울 엄니가 도와주신 겁니다.”
이번에는 소대장을 따라서 4명의 소대원이 남국민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지원동 버스종점이 훤하게 내려다보였다. 공수부대원 한 명이 시민군 총에 맞았는지 공수부대원 하나가 그를 들춰 업은 채 4,5명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한 시간 동안의 총격전도 끝이 났다. 소대장이 사망한 소대원을 차에 실어 도청으로 보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소대장과 소대원 5명은 급히 달려온 기동타격대 지프차를 타고 교도소로 향했다. 도청 상황실에서 시민군을 지원해달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안성옥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함께 가지 못했다. 오후 2시쯤부터 공수부대원들과 정신없이 싸웠던 것이다.
저녁 7시 무렵이었다. 교도소로 갔던 소대원들이 파자마와 러닝셔츠 차림으로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교도소 부근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가 소대장과 잘 아는 공수부대 지대장이 옷을 벗긴 채 풀어주어 도로변 가정집에 들어가 옷을 얻어 입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안성옥은 그날 밤에도 상가옥상에서 경계를 선 뒤 지원동다리 밑에서 새우잠을 잤다.
<계속>
“안 보여서 죽은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피곤해서 늦잠을 자부렀그만요.”
“자네 어머니가 자네를 만나러 오셨다가 잠시 으디로 가셨네. 긍께 멀리 가지 말게.”
소대장 말대로 10시 30분쯤에 어머니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왔다. 화정동에서 지원동까지 20여 리를 걸어서 온 모양이었다. 안성옥은 뜻밖의 일이었으므로 놀랐다.
“엄니! 어처께 오셨소?”
“니 속옷을 갖고 왔다.”
“도청에서 밤에 수도꼭지를 틀어 빨아입그만이라우. 근디 뭣헐라고 가지고 왔소.”
“니 사촌 성덜이 여그 있다고 갈켜주더라. 이놈아! 느그 성덜은 데모를 허드라도 잠은 집에서 잔다. 니는 으째서 메칠 동안 안 들어오냐. 속이 타 죽겄다. 얼능 집에 가자.”
“엄니, 하룻밤만 더 있다가 들어갈라요.”
“글먼 속옷이라도 큰집에 가서 갈아입어라.”
“그랄라요. 긍께 엄니는 내 걱정 말고 화정동으로 가씨요.”
안성옥의 큰집은 방림동에 있었다. 보따리를 받아든 안성옥은 방림동 큰집으로 어머니와 함께 갔다. 방림동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지원동을 거쳐 가는 개울물이 합수하는 광주천변에 있었다. 큰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들어간 안성옥은 속옷만 갈아입고 곧 일어나 버렸다. 점심이나 먹고 가라 했지만 아침을 늦게 한 바람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머니는 안성옥이 벗어놓은 더러운 속옷을 챙겼고, 안성옥은 바람같이 지원동다리 쪽으로 올라갔다.
오전 11시쯤 일신방직 여공 김춘례는 기숙사 선배인 고영자와 함께 도청에 도착했다. 고영자는 공장 내에서 친동생처럼 아끼던 김춘례가 할아버지 제삿날이라며 화순에 가자고 성화를 부려 따라나섰다. 시외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도청 시민군들에게 하소연해볼 참이었다. 김춘례는 도청 상황실로 들어가 사정했다.
“할아버지 기일인디 화순 가는 차가 ?을께라?”
“뭣이라고라!”
상황실 간부가 어이없어 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어서 화순으로 가려는데 차가 없느냐는 생뚱맞은 말에 기가 막혔던 것이다. 김춘례보다 다섯 살 위인 고영자가 말했다.
“동생이 무조건 화순까지 데려다주라는 말이 아니라 가는 차가 있냐고 묻그만요.”
고영자가 조근조근 말하자 상황실의 또 다른 간부가 말했다.
“이리 오씨요. 관을 구하러 화순 간다는 말이 있든디 한 번 민원실로 가봅시다.”
민원실 앞에는 관들 주위에 시민군들이 서성거렸고, 소형버스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상황실 간부가 소형버스를 운전하는 벽돌공장 노동자 김윤수에게 물었다.
“이 차가 관 구하러 화순 가요?”
“맞소.”
“누가 가기로 했소?”
“시방 갈 사람을 정하고 있는갑소.”
운전기사 말대로 잠시 후 민원실 안에서 8명이 나왔다. 상황실 간부가 일일이 이름과 직업을 적었다. 신의여고 3학년 박현숙, 춘태여고 1학년 홍금숙, 화천기공사 공원이자 방송통신고생 황호걸, 송원전문대 1학년 백대환, 그밖에 장발한 청년 시민군 2명과 교련복 바지를 입은 고등학생 시민군 2명의 이름도 적었다. 김춘례와 고영자는 마지막으로 차에 타면서 이름과 일신방직 여공이라는 직업을 알려주었다.
소형버스는 전남대병원을 거쳐 지원동으로 달렸다. 소형버스가 지원동 초입에 들어서자 이발소 주인이 뛰어나와 말렸다.
“모두 죽은께 가시 마씨요!”
“우리는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요. 관을 얻으러 가요.”
장발한 청년 시민군이 카빈소총을 창밖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그러나 소형버스가 지원동 버스종점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왼편 산자락에 매복해 있던 장교 1명과 무전병이 11공수여단 본부에 소형버스가 화순방향으로 간다고 보고했다. 3,4분 뒤였다. 지시를 받은 장교가 사격을 했다. 그제야 운전기사 김윤수가 공수부대원이 매복해 있음을 알고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소형버스는 100미터도 달리지 못했다. 주남마을 앞에서 집중사격을 받았다. 김윤수는 즉사하고 소형버스는 벌집이 되어 옆으로 굴러 나동그라졌다. 공수부대원들은 만신창이가 된 소형버스에 또다시 확인사격을 했다. 그런 뒤 공수부대원 팀장이 말했다.
“전원 사살인가? 가서 확인해 봐.”
“산 놈이 있습니다. 비명소리가 납니다.”
“끌어내.”
소형버스 안에는 8명이 즉사한 채 의자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남녀 3명이 중경상을 입은 채 끌려나왔다. 손에 총을 맞은 여고생 홍금숙은 두려움으로 혼절하기 직전이었고, 교련복을 입은 시민군 2명은 숨만 붙어 있었다. 한 사람은 눈알이 빠져버렸고, 또 한 사람은 몸에 총을 맞아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공수부대원들은 3명을 경운기에 태우고 가다가 좁은 산길에서는 부상이 심한 시민군 2명을 훔쳐온 리어카에 싣고 홍금숙은 걷게 했다. 여단본부가 가까운 곳에 있는 듯했다. 무전연락을 받은 공수부대 대대장인 소령이 내려왔다. ‘엄니, 엄니’ 하면서 의식을 찾은 시민군 한 명이 소령에게 빌었다.
“살려주씨요. 관을 얻으러 댕긴 죄밖에 ?습니다.”
“총을 쏴봤지?”
“그런 적 ?습니다. 하느님께 맹세할랍니다.”
“개자식, 이놈들 호주머니를 수색해!”
한 시민군의 호주머니에서 카빈소총 실탄이 두 개가 나왔다. 그러자 소령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 폭도구만. 밑에 데리고 가 처치해.”
하사 1명과 사병 2명에게 지시했다. 잠시 후 네 발의 총성이 주남마을 뒷산 골짜기를 울렸다. 순간 홍금숙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하얀 백지 같은 상태가 돼버렸다. 혼절했다가 겨우 정신을 되찾았다. 그때 공수부대원끼리 주고받는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교복 입은 이 여학생은 폭도들에게 속아서 차를 탄 것 같습니다.”
“병원으로 보내!”
홍금숙은 ‘폭도’라는 말을 ‘악마’로 듣고는 정신을 다시 잃어버렸다. 홍금숙이 눈을 뜬 곳은 시민군 부상자들이 북적거리는 전남대병원 병실이었다.
공수부대가 화순으로 가던 시민군 소형버스에 집중사격을 했다는 급보는 박남선에게도 전해졌다. 박남선은 도청 상황실에서 비상을 걸었다. 즉시 시민군을 태운 기동타격대 지프차와 트럭들이 지원동으로 출동했다. 상황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식당 종업원 김선문과 농사꾼 김용호도 트럭에 올라탔다. 오후 2시쯤이었다. 트럭 3대가 지원동 버스종점이 보이는 도로에서 멈추었다. 벌써 공수부대원과 시민군들이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김선문은 겁이 나서 덩치가 큰 김용호 뒤에 섰다. 김용호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했다. 두 사람은 카빈소총을 잘 쏘지 못했다. 공수부대원이 있는 곳까지 카빈 총알이 날아가는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이 쏘는 엠16 총알은 핑핑 머리 위로 날았다. 두 사람은 전봇대 뒤에 숨어 있기만 했다. 기동타격대원이 되어 막상 오기는 했지만 도청 안에 남아 시신을 염하는 박래풍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총성이 잠깐 멈춘 틈에 트럭으로 되돌아와 짐칸에 오른 뒤 머리를 푹 숙였다. 한참 만에 총구를 전방으로 겨누었다.
그런데 모든 시민군이 두 사람처럼 겁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지원동 시민군 소대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총격전을 벌였다. 공수부대원들과 4,5백 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며 전봇대 뒤나, 건물 옥상 등 사격하기 좋은 위치에서 총을 쏘았다. 공수부대원들은 지원동 버스종점까지 내려와 버스 밑에 엎드려 있다가 응사하곤 했다. 주남마을 입구에 나동그라진 소형버스를 은폐하기 위한 작전이 분명했다.
속옷을 갈아입은 안성옥은 신축공사 중인 영락교회 현관에서 사격자세를 취했다. 현관 주변에도 지원동 시민군 소대원 몇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안성옥이 공수부대원을 향해서 사격을 할 때였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무기수송차가 왔어! 실탄을 가져와!”
뒤돌아 살펴보니 지원동다리에 무기수송차가 와 있었다. 안성옥은 총격이 뜸한 틈을 타 지원동다리로 뛰어갔다. 소대장이 안성옥이 달려온 이유를 알고는 철모에 실탄 150발 가량을 담아 주었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저그 모래가 있는 곳으로 얼능 뛰어!”
안성옥은 공사장 모래더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가 뒤쪽에 누웠다. 총알이 빗발쳤지만 모래더미 뒤는 안전했다. 안성옥은 가쁜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노인 한 분이 소주와 과자를 가지고 왔다. 노인이 호주머니 속에서 유리잔을 꺼내며 말했다.
“고생허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심내게.”
“할아버지! 위험헌께 들어가세요.”
“괜찮네. 나도 자네덜 같은 자식을 키운 사람이네. 쩌그 있는 사람덜도 같이 마시게.”
영락교회 주위에 있는 시민군들도 교대로 와서 한 잔씩 마시며 실탄을 배급받았다. 안성옥도 한 잔을 마시고 영락교회 현관으로 와서 엎드렸다. 소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 퍼지자 뱃심이 더 생기는 듯했다. 조금 뒤에는 신축중인 교회 지하실에서 임시로 살던 목사부부가 올라왔다.
“쌀이 떨어져 라면밖에 없소. 라면 한 박스를 끓여놓을 테니 교대로 와서 드시오.”
“목사님, 감사합니다요.”
술 한 잔 한 뒤 새참으로 라면은 더 없는 별미였다. 시민군들은 총격이 멈출 때를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지하실로 내려가 계란을 넣고 끓인 라면을 먹었다. 안성옥도 차례가 되어 식어버린 라면을 포만감이 들 때까지 훌훌 넘겼다.
그런 뒤, 사격위치를 길 건너 두 번째 전봇대로 바꾸었다. 첫 번째 전봇대 뒤에는 20대 초반의 시민군 소대원이 엠1소총 노리쇠를 당기고 있었다.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총격을 가하자 위아래 푸른 옷을 입은 그가 맥없이 쓰러졌다. 안성옥이 낮은 자세로 달려가 물었다.
“으째서 그라요?”
“총 맞았소.”
그가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으디요?”
허벅지와 배 사이를 손으로 움겨 잡고 있던 그가 안성옥의 말을 듣고는 손을 뗐다. 그제야 그의 하복부에 붉은 피가 흘렀다. 안성옥은 그의 허리를 힘껏 잡고 기어서 나협회로 갔다. 안성옥을 본 소대원 한 명이 길 건너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안성옥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소리쳤다.
“차를 보내주씨요!”
그러자 지원동다리 쪽에서 지프차 한 대가 후진해서 올라왔다. 공수부대원들은 지프차를 향해서 거칠게 집중사격을 했다. 운전석 옆에 앉아 있던 소대원은 총에 다리를 맞아 쓰러지고 차바퀴 하나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운전기사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몸을 피했다. 안성옥은 또다시 부상당한 소대원을 부축해서 지원동다리까지 내려갔다. 소대장이 부상당한 소대원을 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낸 뒤 말했다.
“자네는 운이 좋아. 총알이 자네를 피해서 댕기는 거 같아.”
“헤헤. 속옷을 갈아입어서 그럴께라? 울 엄니가 도와주신 겁니다.”
이번에는 소대장을 따라서 4명의 소대원이 남국민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지원동 버스종점이 훤하게 내려다보였다. 공수부대원 한 명이 시민군 총에 맞았는지 공수부대원 하나가 그를 들춰 업은 채 4,5명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한 시간 동안의 총격전도 끝이 났다. 소대장이 사망한 소대원을 차에 실어 도청으로 보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소대장과 소대원 5명은 급히 달려온 기동타격대 지프차를 타고 교도소로 향했다. 도청 상황실에서 시민군을 지원해달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안성옥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함께 가지 못했다. 오후 2시쯤부터 공수부대원들과 정신없이 싸웠던 것이다.
저녁 7시 무렵이었다. 교도소로 갔던 소대원들이 파자마와 러닝셔츠 차림으로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교도소 부근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가 소대장과 잘 아는 공수부대 지대장이 옷을 벗긴 채 풀어주어 도로변 가정집에 들어가 옷을 얻어 입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안성옥은 그날 밤에도 상가옥상에서 경계를 선 뒤 지원동다리 밑에서 새우잠을 잤다.
<계속>